명절이 좋았던 것은 열 서너 살 때 쯤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은 그 나이때 까지 였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날마다 손꼽아 가며 명절 날을 기다렸었다
내가 열 살 안 팍 쯤에는 6.25 전쟁 직후인지라 명절이라고 해서 엄청 맛난 고급진 음식을 해 먹었던 것은 아닌데
그냥 그 들뜬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의 명절 분위기는 지금 도시에서 자라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해서 좋은 세월에 살고 있지만
온 마을이 한 마음으로 조삼님께 예배하고 선조들의 덕을 기리고 어린이나 아이나 모두 축제처럼 나누고 즐기는
그런 정서와 인정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안타깝기도 하다
어른들은 1년 농사를 하면서 설명절 지나고 나면
그때 부터 무엇이라도 좋은 것 있으면 추석에 쓸거라고 고이 아껴 두었고
추석이 지나고 나면 또 설에 쓸것이라고 챙겨 놓으시고는 했던 것 같다
모든게 풍족하지 않았던 시기라 그랬던 것일테지
음력 7월부터 추석 송편 만들때 쓸 솔잎을 뽑아 말리면서 부터 추석날을 손꼽았던 것 같다
솔잎은 봄에 새 순이 나오는게 아니라 여름에 새순이 나왔다
봄엔 송화가루 만드는 알갱이가 달린 순이 나왔고 그 알갱이가 바람에 다 날리고 나면
그 자리에 새 솔잎이 나왔는데 그게 음력 7월 쯤이면 연두색으로 알맞게 자라 있었고
1년중 그때만이 솔잎이 쏙 쏙 티끝 없이 잘 뽑혔다
그걸 뽑아다 잘 말려 추석 송편을 찔때 시루에 송편 한둘레 놓고 솔잎으로 덮고를 반복해서 송편을 쪄냈다
시루에 쪄진 송편을 물에 얼른 헹궈서 농사 지은 햇 참깨로 짠 참기름을 발라놓으면
솔잎향이 그윽한 고소하고 쫄깃했던 송편 맛,
그해 농사한 햇녹두로 송편 속을 넣어 만들었고
나는 지금도 고소한 참깨에 설탕을 버무려 달달하고 고소하게 송편속을 넣은 것 보다는 녹두로 속을 넣은 송편이 더 맛있다
무엇이든 새로 농사한 것으로 추석차례상에 올릴 것들을 만들었지만
송편을 빗는 쌀은 햅쌀이 나와도 묵은쌀로 했었다
햅쌀로 송편을 만들려면 반죽이 늘어지고 쳐저서 송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었다
추석 전 날 송편을 쪄 냈지만 제사에 올리기 전에는 맘 껏 먹지 못했다
쪄 내는 과정에서 깨지거나 망가진 것만 먹게 하셨지
솔잎을 넣고 쪄 낸 송편은 솔잎이 방부제 역할도 했던 것 같다
추석 지나고 좀 지나서 학교 운동회가 열렸는데 운동회 때는 학생이 있는 집들은 모두들
만난 것을 만들어 점심을 챙겨들고 학교로 와서는 학교 운동회는 마을 잔치 같았는데
추석에 쪗던 송편은 솔잎째 그냥 걷어내 채반에 담아 시원하게 두면 운동회 때까지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것을 다시 한번 김 올려 쪄서 운동회날 먹었었는데,,
모두들 가난하고 어려웠어도 설이나 추석에는 평소에 입어본적 없었던 고운 옷감으로 새옷을 한벌씩 해 주시기도 했었지
사진에 있는 분꽃 색처럼 고운색 한복을 만들어 장농속에 넣어 놓으시면
할머니가 안계실때를 가려 날마다 한번씩 꺼내 입어보고는 했었는데
옷을 입고 작은 거울을 앞 뒤로 비쳐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 께서는
그리 거울을 앞 뒤로 본다고 기생이 될려나 꾸중 하시기도 했었지, 그런 것들이 어제 인양 그리워진다
시집을 와서 시부모님 모시고 함께 살때나 따로 살면서 명절때 부모님 계신 곳으로 명절 쇠러 갈때도
그게 힘들고 싫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부모님 들이 반가워 하셨고 손윗동서와 같이 부지런히 바쁘게 명절 준비 하는 걸 늘 즐겁게 했었는데,
명절이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한것은 아이들 결혼시키고 나서 부터인 것 같다
명절엔 물가가 언제나 비싸져서는 아이들 결혼시키기 전에는 명절날 뭘 해 먹는 걸 하지 않았었다
물가 오르기전 미리 해 먹었고 또 대목이 지난 다음에 차려 먹었었는데
사위에 며느리에 식구가 더 생기니 명절날을 심심하게 보낼 수 없게 되어서는,,
젊은 애 들은 늘 바쁘니 음식이랑 모든 준비를 나혼자 다 해야 하는 것도 이젠 힘들어 져서
나도 명절에 어디로 도망 가고 싶어진다
요즘은 차례상도 마련해야 하니 명절 물가가 두 배로 올라도 그걸 장만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
우리 아들은 딸만 하나 있어서 명절 두 번 과 기제사 한번 1년에 세 번 지내는 제사를
돌아가신지 3년이 되는 올해 까지만 지내고 집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게 아들이 없는, 아들에게도, 부담을 덜어주는 일일 것 같아 울집 할배 있을때도그렇게 말 해 두었었는데
아들은 엄마인 내가 세상 떠나도 지가 살아 있는 동안은 제사를 지낼 것이니
그냥 계속 집에서 제사를 지내 자고 한다
고맙기는 하지만 내가 나이도 있어 힘들기도 하고 또 내가 이걸 정리 해 줘야 자식들이 편안 할 것 같아
명절이나 제삿날 간소하게 차려서 산소에 다녀 오는 것으로 제사를 갈음 하고 싶어 진다
자식의 입장으로 부모 제사를 안 지낸다 하기는 더 어려울 것 같으니,
그런 식으로 해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는 정성된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올해는 코로나19로 명절에 오고 가지 말라고 하니 딸네 식구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해도 내가 훨씬 편할 것 같다
다섯식구가 와서 하룻밤 자고가는 동안 먹을꺼리 만들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힘들기도 하고
울집에 다녀 가는게 효도라고 생각 하는 것 같지만
늙은 내가 힘들게 일해야 하니 효도가 아니고 불효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60대 까지도 집안 일 하는 것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때 하루에 했던 일들은 사흘을 걸려 해야 할 만치
기운이 많이 떨어 졌는데 내 자식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늙어 본 적이 없으니
늙은이의 몸 상태나 마음을 전혀 짐작도 못 하는 것 같다
해서 명절 돌아 오는게 여간 부담 되는게 아니다
요즘엔 옛날과 다르게 늘 자주 보고 안부도 듣고 하니
코로나가 아니래도 명절은 각자 자기 집에서 지내던가 와서 밥 한끼만 먹고 가던가
1박 2일은 내가 너무 힘들어,
딸아, 나도 이제 힘 든다고, 나도 이제 80이 가까운 늙은이라고,,,,,!!!
'할머니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5년 만에 가장 추운 서울, 체감온도 20도 (0) | 2021.01.08 |
---|---|
2020,마지막 날,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걸 깨우쳤던 힘들었던 시간들 (0) | 2020.12.31 |
코로나를 뚫고? 다녀온 장례식 (0) | 2020.09.07 |
탄천 풍경,,,아침 햇살 찬란한 아름다운 힐링 장소인데,, (0) | 2020.09.01 |
봄 비 조용히 내리는 저녁 ,,,내일을 위한 기도~!!! (0) | 2020.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