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뉴스

日本 대지진 5일째 2011:3:15일 대재앙 앞에 침착, 日 DNA의 비결 뭔가

L일순 2011. 3. 15. 22:26

 

대재앙 앞에 침착, 日 DNA의 비결 뭔가
[노컷뉴스] 2011년 03월 15일(화)
  [CBS사회부 이대희 기자]
#1.
2005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에 상처입은 미국인들은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발생한 인간의 행위에 또 한 번 상처입었다.
 이곳에서는 약탈과 방화, 총격전, 성폭행 등 무법과 혼란의 상태가 지속됐다.
 심지어 경찰까지 약탈행위에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 방위군이 치안유지를 위해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2.
지난 11일 진도 9.0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한 일본.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는
13일 물자가 부족해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에서 새치기를 하거나
약탈하는 행위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오직 수백명이 차례로 줄을 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일부 남아 있는 신호등에서 시민들은 파란불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피해지역에 투입된 자위대는 구조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미증유의 대재해를 맞은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수만명의 사상자가 예상되는 이번 대지진 앞에서 울부짖거나 눈물을 쏟는 일본인들을 찾기가 어렵다.
혼란을 틈타 강도나 약탈 등의 범죄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비춰진 일본인의 모습은 혼란 속에서 차례차례 줄을 서 구호식품을 받는 등
침착한 대응이 돋보이고 있다.

◈ 고도로 안정된 사회 시스템 안에서 돋보이는 성숙한 日 시민의식
이런 일본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도로 안정된 사회 시스템에서
그 비결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국대학교 박종명 교수는
"일본은 평균 소득이 3만5천불을 상회하고 빈부의 격차가 덜하기 때문에
 비상상황이 오더라도 개인적으로 대응에서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은 혼란에 직면했을 때 덩달아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질서를 지키는 게 전체로서는 이득이라는 것을 공감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보육원 교육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도록 교육을 받으며
이것이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체화한다"면서
"이를테면 줄 서는 게 흐트러지면 결국 자신이 손해라는 점,
비상시 시스템이 공평하게 작동하리라는 점을 믿기 때문에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전통
또 다른 전문가는 그 비결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

한림대학교 남기학 교수는
"역사 문화적으로 개인이 나서기보다는 전체를 의식하면서
구성원으로 위치를 잘 수행하는 습관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신분질서가 강해 한번 무사면 무사, 상인이면 상인,
농민이면 농민으로 살아야 했다는 것.

이에 따라 신분 상승을 추구하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데서 자아실현의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 상시적인 재해 대비 교육
다년간 일본에서 생활했던 전 영사관은
일본의 상시적인 재해 대비 교육이 그 비결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2009년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4년간 영사관을 지낸 서울 송파경찰서 교통과장 이영철 경정은
일본 생활에서 2005년과 2007년에 걸쳐 2번의 큰 지진을 겪었다고 했다.

"내륙지역에 지진이 나 도로가 절단되고 산사태로 차량이 파괴돼 사상자가 발생했던 큰 지진이었지만
당시 목격한 일본인들의 침착한 모습은 이번 지진 대응과 정확히 일치했다"고 이 경정은 말했다.

이 경정은 이러한 대응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육'이 깔려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인들은 긴급상황 앞에서 유아원 시절부터 교육받은 매뉴얼을 철저하게 이행한다는 것.
이 경정은 "일본은 이번 피해로 부족했던 매뉴얼을 보완해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교육시켜 또 다른 피해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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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어령]

바다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늘 보던 파란 파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여름바다의 눈부신 모래밭이 아니라 산처럼 무너지는 검은 파도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쉽게 휩쓸어버리는 허망한 동영상은
우리가 뽐내던 그 컴퓨터 CG가 아니었습니다.
규모 9의 지진과 함께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였습니다.


 쓰나미(つなみ·津波)는 일본말입니다.
그 말이 세계의 공식용어가 된 것은 그만큼 일본에는 지진과 쓰나미가 많았던 까닭입니다.
그런데도 이번 지진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인 규모 8.6의 호에이(寶永·1707년)지진보다
 2배가 넘는 에너지였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2만2000명이 사망한 산리쿠(三陸·1896년)지진보다
인명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예측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때까지는 발원지의 지역민들이 겪는 지진이요 연해안 주민만이 당하는 쓰나미였지만
해안선을 통째로 옮겨 놓았다는 이번 지진은 일본 열도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앞으로 일본은 국가의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바꾸지 않고서는
이 재난의 여진을 극복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일본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번 지진은 지구의 축도 2.5㎝나 기울게 했다고 합니다.
인간 문명 전체의 한계와 그 임계점을 드러낸 것이지요.
인간의 문명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이 지구상에서 생존하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검은 파도가 덮칠 때 정쟁을 멈추는 일본인들을 보았습니다.
도쿄전력이 전후 처음으로 제한 송전을 하게 되자 피해 지역에 우선적으로 송전하도록
시민들은 일제히 자기 집 전선 플러그를 뽑았습니다.
남을 헐뜯던 인터넷은 사람을 찾고 돕는 생존의 게시판으로 바뀌고
트위터는 중얼대는 잡담에서 이재민을 돕는 생명의 소리로 변했습니다.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도 지진에 대비하는 기술이 앞선 나라입니다.

일본 국민은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재난에 대비한 훈련과 질서의식을 갖춘 모범적인 국민입니다.
 이번에도 지진이 일어난 수퍼마켓의 현장에서 물건을 훔쳐가기는커녕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 값을 치르기 위해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외국인들은 감탄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아무리 그런 일본인들도 이웃나라 없이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일본보다 가난한 나라들도,
일본을 미워하고 시기하던 나라들도, 멀리 떨어져 무관하게 바라보던 나라들도
일본인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서 가슴을 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친구가 없는 나라라고 스스로 비판해온 일본인들입니다.
그러나 주변에 함께 울고 함께 상처를 씻어줄 착한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그 재난 속에서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비유처럼 목숨을 구해주는 것이 바로 내 이웃임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애)야말로 부국강병의 이념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난 자연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인간의 왜소함과 나약함만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해관계로 얽혀 살고 정실로 손을 잡아 끼리끼리 살다가도
생명을 위협받을 때에는 하나로 뭉치는 힘을 자연의 재난을 통해 배우고 실천합니다.

 독도 분규로 등을 돌렸던 한국인들도,
센카쿠열도로 총구를 맞댔던 중국인들도 지진이 일본인의 생명을 흔들 때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도움을 주기 위해 재난의 땅을 향해 마음과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을 향해 달려갑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새로운 문명은 독립(INDEPENDENCE)도 예속된 의존(DEPENDENCE) 관계도 아닌
상호의존관계(INTERDEPENDENCE)의 생명공동체적 시스템에서 탄생할 것입니다.
 일본을 강타한 지진이 태평양 연안의 모든 나라에 쓰나미의 위험을 불렀듯이
그에 대응하는 생명 역시 공감과 협력의 지혜에 의해서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았던 일본 쓰나미의 동영상을 리와인드해서 틀어보면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 한국 땅에도
그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지진과 쓰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세계 문명과 그 시스템에서 낙후하여 겪었던 후진국의 고난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와 세계인들이 대비해야 할 문제는
어떤 선진 문명으로도 대응하기 힘든 환경의 쓰나미,
금융의 쓰나미, 정보의 쓰나미, 테러의 쓰나미입니다.
그리고 현대 문명의 임계점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일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처럼  생명의 구제입니다.
사사로운 이해관계와 정쟁과 그 많은 갈등이 생명 앞에서는 참으로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구제하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니고
바이오필리아(생명애),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애),
그리고 네오필리아(neophilia·창조애)와 같은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요 자본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고 했던 일본과 한국이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을 자본으로 한
 진정한 글로벌리즘이 무엇인지를 세계에 알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검은 파도를 이기는 우리의 블루 오션입니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