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일상

세월을 어디다 꽁꽁 붙들어 매었으면 좋겠다

L일순 2020. 12. 4. 10:04

 

어느새

달력이 달랑 한 장 만 남았다

2021 새 달력을 준비하면서 올 한 해 시간들이

손에 쥐었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허허롭기만 하다 

한때는 나도 나이를 더 먹고 새 해가 다가오는 것에 설레임이 가득했던 시절도 있었을 텐데

이젠 잠시도 쉬임 없이 고장 나지도 않고 흘러가는 세월을 어디다 꽁꽁 동여매 놓을 순 없을까,,, 싶어 진다

돌이켜 보면

나이 먹는 것을 처음으로 두려워했던 때가 서른세 살 때쯤 인 것 같다

서른다섯만 넘으면 젊음이 다 스러져 갈 것 같아서 서른세 살쯤부터 쓸쓸해져서 마음의  방황을 겪었었다

 

그다음이 마흔아홉,

내 8촌 형제 중에 나와 동갑인 셋이 있었다

내가 생일이 제일 빨라 언니이고 누이였었는데

늘 나를 누이라 부르는 것을 억울해하던 남동생에게 이제부터 나는 나이를 더 먹지 않고

앞으로 쭈~욱 마흔아홉일 테니 그대가 오라비를 하라고 했던 적이 있었지

 

올해가 지나면 나는 78세가 된다

아이고,,, 내가 생각해도 귀신스러운 나이이고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워지는 숫자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어디가 특별히 고장 난 곳은  없었어도

또래에 비해 체력이 떨어져서 늘 비실거려서는 이렇게 오래 살 것을 생각지 못했었다

 

우리 집 할아버지도 늘 자기가 더 오래 살 것으로 자신했었는데 할아버지를 지금 내 나이만큼의 떠나보내고

어느새 내가 세상 떠나던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앞으로 내가 얼마까지 더 나이를 셀 수 있을지 모르지만 77세 이후로 나는 나이를 더 세고 싶지 않다

78, 79, 80, 생각만 해도 도망가고 싶고 그게 내가 아닌 것 같다

77세나 살았지만 그게 얼마만큼의 오랜 세월인지 도무지 느낌이 없다

 그냥 모두가 어제 안양 싶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