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오대산 선재길은 겨울로 들어 섰다~ 2016,10,24일 풍경

L일순 2016. 10. 28. 12:00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는 옛길이 "선재길" 이라는 예쁜 이름을 달고 트래킹 코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아

단풍 고운 이 가을에 나도 가 보자고 10월 24일 길을 나섯더니,, 에구

단풍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다 떨어져 버리고 겨울분위기 나는 길을 걷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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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0대 초반일때 보라색 오동꽃이 피는, 신록이 푸르는 계절에 이곳엘 왔었다

그때는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길이 작은 오솔길 이었고 개울도 지금처럼 넓지 않고 또랑 처럼 조붓했었던 기억인데

오솔길이 그대로인지는 모르겠는데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계곡은 시냇물처럼 넓직해 졌고 그때는 없었던 포장된 도로가 계곡 옆으로 나 있어서 쉴 새 없이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예전에 어렸을때 가 보았던 여주 신륵사를 가보고 옛모습이 하나도 없이 도시처럼 되어서 낮설었었는데

이곳도,  선재길이라는 이 길도, 월정사도 많이 달라져서 생전 처음 와보는 곳 같았다





관광버스가 상원사쪽에 내려 주고 걸어 내려 오라 했는데 길을 참 예쁘고 걷기 쉽고

야생화도 많을 것 같고 단풍철이 아니래도 나뭇잎 고운 계절엔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월정사 가까이 아랫쪽으로는 조금은 붉은 잎들이 남아 있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섶다리


 산골에 작은 개울에는 콘크리트 같은 구조물로 다리를 만들지 않고

생소나무를 잘라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 잎이 달린 가지는 위에 얹고 그 위에 흙을 얹어 만든 것을 섶다리라 한다

여름 장마져서 큰 물이 나면 떠내려 가고 가을이면 다시 놓고 해야 하는 ,,,









개울 옆으로 바로 길이 나서 참으로 예쁜 길~












월정사 2,4킬로 남은 지점인데 해발 700가까이 된다는데

이 길은 그리 경사가 없어 아무나 쉽게 걸을 수 있겠다

늙은이인 나도 어렵지 않게 걸었으니


초목이 우거진 내년봄과 가을에 꼭 다시 오리라,,,

보니 진부에서 상원사까지 시내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여행사 상품으로 오지 않아도 대중교통으로도 혼자 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넉넉한 시간으로 천천히 산길에 핀 작은꽃들과도 눈 맞춤하고

아름답고 청아한 새소리도 들으며 유유자적  자연속에 빠져 들 것 같기에,,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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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는 자장율사에 의해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다.
자장율사는  중국으로 유학하여 산서성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이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준 뒤,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한다 
 
이후 귀국하여 찾게 된 곳이 강원도 오대산이며,
이때 월정사를 창건하고 오대 산 중대(中帶)? 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조성하게 된다. 


자장율사는  신라를 불국토로 재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귀국하면서 부처의 정골(頂骨)과 불사리 100과를 가져왔다고 전하며,
당시 신라 영토 각지에 불사리를 나누어 봉안하면서 적멸보궁들을 창건했다.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인제의 봉정암(鳳頂庵), 영월의 법흥사(法興寺), 정선의 정암사(淨巖寺),
오대산 월정사 등 5대 적멸보궁이 전해온다.
이 가운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귀국 직후 직접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다른 적멸보궁의 경우는 사리를 안치한 장소가 분명하여 방등계단(方等戒壇)이나 사리탑(舍利塔)이 조성되어 있지만,
오대산의 경우는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그 정확한 장소가 알려지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한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된 오대산 적멸보궁은 상원사(上院寺)를 지나 중대(中帶) 사자암(獅子庵) 위쪽에 위치한다.

사자암은 적멸보궁의 관리와 예불을 위한 노전爐殿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은 소임을  맡아 보는 임원의 숙소)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보궁의 노전승이 거처하는 곳이다.

적멸보궁 건물의 네 벽 모두는 널빤지로 꾸며진 판장벽(板張壁)이며, 정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달고 양 옆 칸에는 높은 들창을 달았다.

지붕은 청기와를 덮었으며, 용마루와 합각마루에 용두(龍頭)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