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팔상전 捌相殿
국보 제 55호
신라 14년(553)에 처음 건립 되었으나 그후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4년(1626)에
조선의 승병장인 사명대사가 주관하여 다시 지어 졌으며
이후 1968년에 다시 해체하여 복원공사를 하였다
팔상전은 5층 목조탑 건축으로 한국 목조탑 건축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내부의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 있어 팔상전이라 부르게 된 듯 하다고,,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5칸, 3층과 4층은 정면과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캉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다
처마를 장식하는 공포 양식은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위에만 공포를 짠 주심포 식이고
5층은 기둥사이에 공포를 짜 올린 다포식이다
차가 다니는 길 외에 숲이 우거진 보행자 길
마치 우리네 늙은 어머니처럼 몸통은 다 파먹히고 삭아 없어졌는데도 성성히 잎을 피우고 있는 고목 한그루
많은 세월을 이곳을 오고 가는 이들을 보며 때론 그늘도 되어주고 바람도 되어 주었겟지
누가 옮겨 주지 않으면 평생을 한자리에 서 있을 수밖애 없는 저 늙은 나무는 얼마동안 저 자리에 서 있었을까,,
고단한 몸을 하고 앞으로 언제까지 서 있을 수 있을까,,,
법주사에 있는 보물 들
국보 3점
쌍사자석등, 팔상전, 석연지
보물 12점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 대웅보전, 원통보전, 법주괘불탱화, 소조삼불좌상(3구)
목조관은보살좌상,철확,북천암수암화상탑
지방우형 문화제 22점
순조대왕태실, 법주사 세존사리탑, 사천왕문,, 법주사 석조 벽암대사비,, 자정국존비,, 속리산 사실기비
금강골 쌍탑,, 석옹 법주사, 능인전 법주사,, 선희궁원당,, 법주사,, 궁현당,, 법주사가경구년명범종
보은 중사자암 동종 법주사 선조대왕 어필병풍 법주사 주서무일편 병풍 법주사 대웅보전 후불도 5폭
법주사 여적암 다층청석탑 법주사 복천암 극락보전 법주사 복천암 목조아미타삼존불상
법주사 복천암 신중도 법주사 복천암 삼세불도 문화재자료 (2점) 법주사 수정암 석조여래좌상
보은법주사 상고암 마애불상군
속리산 법주사
내가 사는 수도권에서 속리산 법주사를 갈려면 대중교통으로 3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여행사 상품으로 잠깐 다녀온 법주사
여행사 상품으로 가다보니 이곳이 기도도량 이라는 생각보다 관광지 쯤으로 생각하고 가게 되는게 사실이다
처음 가본 법주사는 우선 적지 않은 규모에 놀랐고 산을 많이 오르지 않는 곳에 있어 대중들이 찾기 어렵지 않아 좋았다
한정된 짧은 시간 내에 둘러봐야 해서 경내를 반도 못보앗던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는데
사진을 올리면서 자료를 검색해 보다 다시 놀라게 되었다는
관광지로 가볍게 생각하고 갔었던 그곳에는 국보가 3점이나 있고 보물이 12점 지방유형 문화재가 22점이나 있다 한다
내 짧은 상식으로는 법주사 하면 커다란 청동인지 금동인지 미륵대불이 있고
나무로 유일하게 벼슬을 받은 정이품 소나무가 있는 곳 , 그정도 였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어디를 가게 되면 가기전에 그곳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숙지하고 가야 알차게 돌아보고 올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러서도 숱한 전쟁의 참화속에 훼손되지 않고 의연히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고맙기도 했다
한정된 시간이라 부지런히 돌아 다녔어도 일부만 보고 올수 밖에 없어 아쉬웠고
멀지 않은 날에 꼭 다시 가서 며칠 머무르고 싶은 곳,,,
쌍사자 석등
국보 제 5호
신라 석등중 뛰어난 작품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으로 추정 된다고 하며
높이가 3.3m로 넓다란 팔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으로는 윗돌을 받치고 잇는 모습이다
석등의 구조는 8각의 지대석에서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 상대석을 따로 조각하여 쌓아 올리지 않고 하나의 돌에 조각 한 것이며
다른 석등들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1977년 12월 6일 충북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의 금강문과 법주사 팔상전(국보 55) 사이에 있는 불사의 산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중앙 1칸은 통로이고 양쪽 2칸에는 높이 5.7m, 둘레 1.8m의 천왕상을 2구씩 4구를 만들어 세웠다.
국내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사천왕상으로 법주사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대웅보전 보물 제915호,
얕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중층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이라 한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三身佛)이 안치되어 있고
.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 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의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실내 안존불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이라 한다
.
범종, 범종각
법주사 범종은 조선 순조 4년(1804) 7월에 대시주 1명과 15명의 일반시주자의 시주를 받아
4천근의 동으로 제작된 청동종이다
종신鐘身 하단에는 가경구년갑자칠월일대법주사대종중사천근(嘉慶九年甲子七月日大法住寺大鐘重四千斤)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음각되어 있고 시주지와 당시의 주지 만든이 등이 새겨져 있어
제작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종 이라 한다
조선시대의 범종으로 종신의 문양이나 제조기법이 뛰어난 것은 아니나
시주나 당시의 주지 제작자 제작연대 사찰명이 정확히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이 있어보존가치가 높다 한다
범종각은 옛건물이 아니고 1970년데 지어진 것이라고
보물 제916호로
원통보전은 법주사 창건 당시 의신조사(義信組師)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서 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창하고,
임진왜란 떼 소실된 것을 1624년 벽암대사(碧巖大師)가 다시금 복원하였다
전각 내부에는 앉은키 2.8m, 허리둘레 1.9m의 거대한 목조의 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이 자비가 넘치는 상호로 봉안되어 있고
. 원통보전은 정방형(正方形)의 특이한 건축양식으로서 조선 중기의 미묘하고도 화려한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주심포계(柱心包系)의 단층 건물로 사모지붕에 절병통으로 조성된 특유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약사전
명부전과 삼성각
진영각
진영각은 역대 고승 대덕의 진영이 보관도어 있는 곳
진영각 앞에 당간
법주사 철 솥
보물 제 1413호
철솥은 법주사 공양간 근처에 있던 것으로 높이 1.2m 지름2.7m 이고 두께는 10cm에 무게는 20톤이나 된다 한다
큰 사발 모양을 한 이 철솥은 쌀 40가마를 담을 수 있는 크기로
법주사가 번성했을 당시 신도가 3천이나 되었으며 그때 장솥으로 사용 하던 것이라 한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문양도 없고 제조년대나 제조 기술 등 의 기록이 없어 제조방법등은 알지 못하지만
주철로 주조된 대형 주물솥이라는 점에서 기술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가치가 있다 한다
보물 제1417호
신라 33대 성덕왕 19년 (720년)경에 조성된 입상으로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으며,
향로 용기의 면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보살상은 앞가슴 부분의 법의가 벌어져 있고,
힘이 들어간 듯한 근육이 조각 자체를 강하게 느껴지게 한다고 한다
구원겁토록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하고 있는 희견보살의 모습을 조성해 놓은 것으로 높이 약 2m, 붉은 화강석 재료의 조각상이다
무식한 나는 이 조각품을 보고 죄를 지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했는데,,
처음 본 단풍나무 꽃
암꽃과 숫꽃이 다르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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