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

설악산 관모봉 아래 조용한 천년 고찰 영혈사靈穴寺

L일순 2014. 11. 17. 10:00

 

 

중심법당인 극락보전

 

설악산 관모봉 아래 영혈사

 

관모봉(冠帽峰 877m) 은 강원도 양양군 서면 장승리 방면의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 지구에 있는 봉우리란다설악산국립공원 동남쪽 경계선 상에 있는 해발 877m의 봉우리로서 관모산(冠帽山)이라고도 한다.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 자락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둔전계곡을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송암산(松岩山)과 마주보고 있는 곳이라고

 

. 산 아래에 신라 때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영혈사(靈穴寺)가 있다.

 
 
영혈사(靈穴寺)는 관모봉 정상 아래에 있는 사찰이다

 

10월말, 설악 주전골 입구인 오색약수터 숙박시설 단지내에 있는 설악 오색힐링의 집 안내로 갔던  영혈사

오색힐링의 집은 1박에 5~6만원 숙박비에 1일 삼식제공 포함 

근처 산행, 사찰 안내등을 주인이 직접 운전하고 인솔하는데 추가 비용은 없다

식사도 매끼 건강식을 부폐식으로 깔끔하게 차려낸다

설악 오색 흴링의 집http://cafe.daum.net/sns9

 

 
 
설악산은 강원도 속초시, 양양군, 고성군,인제군  4개의 시,군에 걸쳐 있으며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세번째로 높은 설악산은 주봉인 대청봉(1,708m)을 비롯하여

70여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외설악과 내설악으로 구분하며 근래에는 오색지구를 추가하여 남설악에 넣었다고
 
한계령과 미시령을 경계선으로 동해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이라 구분하며 외설악에는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대청봉, 관모산, 천불동 계곡, 울산바위, 권금성, 금강굴,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등  기암절벽과 큰 폭포들이 있고

 

내설악에는 백담계곡, 수렴동계곡, 백운동계곡, 가야동계곡, 와룡, 유달, 쌍폭, 대승 폭포,

백담사, 봉정암 오세암 등의 사찰들이  있으며 계곡이 아름답고 산세가 빼어나 사계절 관광객이 끓이지 않는 곳

 

그럼에도 관모봉 아래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영혈사는  고요하기만 했다

한계령 주전골 등 높은 곳에는 이미 나뭇잎이 다 떨어졌던 10월 30일쯤 영혈사 가는 길은 아늑하고 단풍도 아름다웠다

설악이 이제 두번째인 나는 설악산 낮은 봉우리 깊숙하고 한적하게 자리잡은 영혈사를 알 수 없었는데

좋은 인연을 만나  찾아 가게 된 곳

 

스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시절 인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는거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오거나 가거나 무심한 다른 사찰과 달리 이곳 보살님 께서는 잠깐 들린 방문객을 얼마나 반기시는지

달려 오셔서 법당문을 열어주시고 또 달려 가셔서 산신각 문도 열어주시고

자유 여행이 아니라 일정이 바쁘다 하니 그래도 들려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언듯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일정이 바쁘지 않으면 오래 머물며 이 곳 저곳 다 참배 했으면 좋았겠는데,,

   

요즘 사찰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위해 멀쩡한 역사깊은 전각도 헐어버리고 커다랗게 새로 짓는 걸 너도 나도 하는데

영혈사는 역사는 깊다 했는데 호화롭지 않고 작은 법당과 전각들이 오히려 마음을 경건하게 해 주던 곳,

이런 모습이 원래 예전부터 있었던 우리나라 사찰의 모습인데,,

기회되면 다시 가서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다

 

 

 

 

지장전과 원통전

 

 

양양 영혈사는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화일리 설악산 동남쪽 관모봉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게종 신흥사의 말사인데  689년(신라 신문왕 9) 원효대사가 창건 하였다는 설이 있으니 그야말로 천년 고찰이다

 

원효대사는 687년 설악산에 일출암(日出庵)을 세웠으며 2년 후 청련암과 함께 이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원효대사는 686년에 입적하였으므로 절을 세운 뒤 창건주로 모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기도 한다고

원효대사가 입적했다고 하는 혈사(穴寺)를 사찰측에서는 영혈사라고 말하고 있다고,

 

영혈사가 처음 역사에  기록을 남긴 것은  1688년 (조선 숙종14) 때라고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90년 취원이 중건했는데 이 때 법당 서쪽에 영천(靈泉)이 있어서 절 이름을 영천사로 바꾸었다

1716년 학천이 학소암을 세우고 1764년에는 묘각이 백학암을 세운 뒤 전성기를 맞았다

1887년(고종 24) 지화 와 도윤 이 중수하고 절 이름을 본래의 이름인 영혈사로 바꾸었으며

1900년 김우경이 산신각을 중수하고 1903년 보훈이 칠성계를 조직하여 사세를 확장 하였다

6.25전쟁을 치렀지만 전각들의 손실 없었다고 한다

 

역사에 기록된 시점인 1600연대로 부터 보더라도 역사 깊은 사찰이고 소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전각들이다

 

건물로는 극락보전과 관음전, 지장전, 산신각, 칠성각, 요사 등이 있다

이 중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관세음보살 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보살상은 1950년 이후에 새로 만든 것이고 본래 있던 것은 현재 낙산사 원통보전 내에 있는 보물 1382호 인 건칠 관음보살상 이라고

 

건칠 관음 보살상 보기 http://blog.daum.net/tkfkd1919/5977198

 

보살상 뒤로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극락회상도와 1958년 제작된 신중탱화, 칠성탱화가 걸려 있으며 원효성사 진영이 봉안 되어 있다

 

지장전은 6.25전쟁 때 설악산지구 전투에서 숨져간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모셔 둔 건물이라고 한다

해마다 석가탄신일에 인근 부대의 국군들이 참여하여 호국영령 천도재를 연다고

 

칠성각에는 원효대사와 의상스님이 무덤 속에 있는 장면과 원효대사가 해골을 들고 있는 내용의 벽화가 있다고 한다

유물로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부도 3기가 전한다

사찰 앞에 관음연못지가 있으며 이곳은 모두 근래에 사찰을 정비 하였다 

 

 

 

 

지장전

 

전해 오는 전설로는

도를 함께 수행하던 의상법사가 동해안 낙산사 홍련암에 있을 적에
원효성사는 설악산 영혈사(靈穴寺)에 계셨는데 하루는 원효대사께서 홍련암으로 의상법사를 찾아가서 도담을 나누는데
한 낮이 지나도 점심공양을 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암자는 식수가 없어서 취사를 하지 않고 천공(天供)을 받아 먹는다는 곳인데
그러나 그날은 천공이 오지 않으므로 원효성사는 공양도 못 얻어 자시고 굶고 돌아가는 길에 인간이 천공을 받아먹는 것은 괴상한 짓이라 하고
 짚고 다니던 지팡이로 암자 뒤 바위를 뚫어 샘이 솟아나게 했다고 한다

그 샘은 영혈사 영천(靈泉)의 물줄기라는 것이다.
성사가 가신 뒤에 천신이 천공을 가져 왔기에 의상대사는 천신에게 공양이  늦게 온 것을 묻자
 "아까 원효법사가 계실 적에는 화엄신장이 삼엄하게 에워싸고 있어서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후로 낙산사는 물이 풍족해지고 영혈사는 물이 줄어들었다나,,

 

 

 

산신각과 지장전

 

이곳을 갔던 날 설악산에 있는 사찰 3곳

멀리 고성에 건봉사까지 하루에 네곳을 들리느라고  일정이 바빠서 사진에 다 담지도 못했다,,

 

 

 

 

 

 

 

영혈사 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

 

 

 

 

칠성각도 참배하지 못했다

 

 

 

 

 

 

 

 

 

 

 

 

 

범종각

 

 

 

 

 

주지 스님께선 이곳 원통전에서 도배를 하고 계셨었는데

일하는 분인 줄 알고 인사도 못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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