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원릉 元陵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내에 있다
영조대왕
출생~~1694년 (숙종 20년) ~~사망~~1776
재위기간~~1724년 ~`1776년 (재위 52년)
정순왕후
1745년 12월 2일 출생~~1805년 2월 11일 사망
왕비 재위기간~~1759년 7월 14일~~1776년 4월 22일
왕대비 재위 기간~~1776년 4월 27일~~1800년 8월 18일
대왕대비 재위기간~~1800년 8월 23일~~1805년 2월 11일
대왕대비 수렴청정기간~~1800년 8월 23일~~1804년 2월 9일
동구릉에는 태조의 릉인 건원릉을 비롯해 아홉기의 릉이 있다
동쪽에 있는 아홉개의 릉이라 하여 동구릉 東九陵 이라고,,
태조의 건원릉, 선조의 목릉, 영조의 원릉, 문종의 현릉, 문조의 수릉,(효명세자)
헌종의 숭릉, 경종의 경릉, 경종왕비 혜릉, 인조왕비 휘릉,
이곳은 한 곳에 아홉기의 릉이 모여 있어
릉역 하나 하나는 다른곳에 비해 단촐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단명했던 조선시대 임금들의 비해 83세까지 장수 해서조선시대 임금으로서는 최장수를 기록했고 52년의 긴 재위 기간을 기록한 영조,
15세에 66세의 영조와 가례를 올린 계비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원릉. 쌍릉 형식이다
사진을 측면에서 찍어서 이런 모습인데 실제로 묘역은
홍살문, 참도, 정자각, 봉분,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구도이다
돌이켜 보면 영조임금이 장수 하지 않았다면 22대 정조임금이 왕위 계승이 위태로웠거나 왕위는 물려받았다 해도 수렴청정으로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할 수 없었을수도 있었겠다 싶어아들에게는 가혹한 아버지였으나손자에게는 든든한 할아버지였던 영조 대왕이시다
조선 21대 영조(英祖, 1694~1776)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 1805) 김씨.
1724년 즉위한 영조는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52년)이나 된다
영조는 원비인 정성왕후貞聖王后 국장시에 서오릉의 홍릉(원비 정성왕후)을 자신의 자리로 정해 쌍릉으로 조성하기를 바랐으나 손자인 정조는 지금의 건원릉 서쪽 두 번째 산줄기에 안장하고 정순 왕후사후에 쌍릉으로 조성 되었다
영조가 14세때 혼인해서 50년 넘은 세월을 함께 했던 영조의 첫번째 왕후였던 정성왕후가 타계 했을때영조는 서오릉에 릉을 조성하면서 그 옆에 자신이 묻힐 자리를 만들어 한쪽을 비워두게 하였는데생전에 왕이었고 왕비였지만 죽은 다음에 무슨 영향력이 있었겠는가,,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는 10세 이전에 연잉군이었던 영조와 혼인하여 (1704~1757)66세에 영면하기까지50년을 넘게 왕비로 있었으나 동구릉에서 먼 고양시에 홀로 묻혀 있고 영조 65세에 15세의 나이로 계비로 들어와 17년을 함께했던 정순왕후는 사후에 영조와 함께 묻히게 되었다서오릉에 있는 정성왕후릉인 홍릉은 지금도 오른쪽이 비어 있는 채로 있다 한다
지금 영조와 정순왕후가 묻힌 원릉은 여주 영릉에 묻혀있는 17대 효종의 릉자리였다는데 효종의 릉을 조성한 후에 계속 병풍석이 벌어지고는 해서 묘자리가 안좋아서 그렇다고 헌종 14년에 여주로 천장 하였다 한다영조의 릉을 조성할때는 가고 싶어 했던 정성왕후가 묻혀있는
홍릉의 자리가 좋지 않고
안좋다고 현종을 천장한 이곳은 나쁘지 않은 곳이라고 하여 이곳에 릉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15세의 나이에 66세의 영조의 비가 된 정순왕후는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하였다는 설이 있고, 영조가 죽고 정조가 왕위에 오를때 31세의 나이로 대왕대비가 되었다가정조가 11세의 아들(순조)을 두고 승하 했을때 4년동안 수렴청정을 했다 한다그 4년동안 정조가 20여년 재위기간에 이루어 놓은 개혁적인 것들을 모두 망가 뜨리고 장용영을 해체 하고 천주교 신유박해도 이때에 있었던 일이라 한다
나무 앞에 있는 네모난 터는 부속건물 터,
그 시대에 백성들의 시선으로 보면 감히 쳐다볼 수 도 없는 높고 높은 위치에 있었던 분들이지만
그 삶을 들여다 보면 행복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백성들의 생활에서도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시대에 영조 임금은 미천한 신분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까지도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을것이고 제일 영광스러워 했을 어머니는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못보고 타계했고
왕위에 올라서도 정당에 힘에 휘둘려 아들을 처참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니 그 회한이 적지 않았을 터.
운명이라는게 참으로 야속해서 어찌하여 정실부인에게서 자식을 태어나게 하지 않고
무수리에 몸에서 태어나게 했는지,,
정순왕후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그시대 조혼 풍속으로 보면 증조할아버지 쯤 되는 65세 (66세?)의 노인에게 시집와서
귀한 곳에 머물러 있기는 했지만 이미 장성한 자식을 둔 후궁들의 밀려 남편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아름다운 청춘을 보냈으나
손자였던 정조 사 후 에 11세의 나이로 등극한 정조의 아들 순조純祖의 수렴청정을 하고 만조백관들을 발아래 조아리게 했으니
그것으로나마 만족감을 얻었을까?
사후에도 50여년 같이 있었던 정실부인을 제치고 남편과 영원히 같이 있게 되었으니
살아 있을 때 쌓였던 한이 달래 졌을까,,,
그때의 정황을 살펴보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이나 정조의 정실부인인 효의왕후가 순한 성품이었던 것 같다
왕실의 서열이야 정순왕후가 높았지만 자식 하나 두지 못했으니 무시당하고 밀려날 수 있었던 상황으로 보이는데,,
인수대비도 중전에 오르지 못했으나 대비가 되고 수렴청정을 한 전례도 있으니
혜경궁도 나서지 못할 것 없었고 효의왕후 역시 욕심을 냈다면 수렴청정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을텐데
왕실 구도상 어른인 정순왕후가 그 자리에 앉은 것 보면 정순왕후가 알려진대로 영악하고 대찬 성품이었거나
혜경궁과 효의왕후가 착실했던 성품으로 보인다.
정순왕후 간택 당시 일화
3간택에 들어선 낭자 김씨는 방에 들어 유일하게, 마련된 방석에 앉지 않고 옆에 바닥에 앉았다
이유를 묻는 윗전들께 대답하기를
방석에 아비의 이름이 있어 그위에 앉으면 아비를 깔고 앉는 것이기에 앉을 수 없었다고했고
대궐 지붕에 기와골이 몇개냐고 물으니 다른이들은 모두 고개를 밖으로 빼고 대궐 지붕을 쳐다 보고 헤아렸는데
김낭자는 다소곳이 앉은채로 맞는 대답을 올리는지라 어떻게 알았느냐는 물음에
마침 비기오는 바깥을 가리키며 마당에 빗물이 떨어져 골이 패인 것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을 묻자 모든 음식에 간을 맞추는 소금이라 대답했고
가장 아름다운 꽃은 옷을 해 입을 수 있는 목화꽃이라 했다고 ,
상궁들이 옷을 해 입히려고 칫수를 재면서 뒤쪽을 재게 돌아서라 하니
"네가 돌아서면 될것이지 어디다 돌아서라 하느냐" 호통을 쳐서 모두 함부로 여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이야기는 경기 여주가 고향인 내가 어려서 외할머니께 옛날이야기처럼 들었던 것인데
그게 정순왕후 간택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라니
인터넷도 신문도 없었던 옛날에도 구중궁궐 이야기가 촌동네까지 전해졌던 것 보면 입소문이 참 대단하다
세종대왕 릉의 수수한 장명등에 비해 화려한 장명등의 문양
원릉은 봉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되어 있지 않아 능역에 올라가 보지 못했다
이 두 장의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빌려옴
이 곳엔 정자각과 비각만 있고
수복방 같은 부속건물은 훼손되어 터의 흔적만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비각에 비가 세개 있다
첫번째는 1776년 정조 어필 "조선국 영종대왕 원릉" 이라 되어 있고
두번째는 1890년 고종때 건립한 것으로 "조선국 영조대왕 원릉" 으로 되어 있고
세번째 비는 정순왕후비로 "조선국 정순왕후 부좌" 라고 새겨져 있다 한다
왕과 왕후가 쌍릉으로 조성된 조선왕실 릉에서 유일하게 왕비의 비가 따로 세워져 있는것이라고,,
한문 실력도 짧거니와 비문에 새겨진 이상한 글씨체는 나는 도통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고,,
용두와 잡상
지붕위에 잡상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이라 하고
왜 서유기에 나오는 동물이 잡상으로 올려져 있게 되었는지 자료를 찾지 못했는데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궁궐의 지붕위에도 잡상이 있고
전각에 따라 그 숫자도 달라 잡상에 대해 자세히 자료를 찾아 보고 싶다.
궁금한게 왜 이렇게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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