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전 思政殿 보물 제 1759호
사정전(思政殿)
왕의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돌보는 편전으로 사용하던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내부의 바닥이 마루였기 때문에 주로 여름에 사용했다.
1395년(태조 4) 지어진 뒤 1553년(명종 8)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했지만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모두 전소되었고,
이후 1867년(고종 4) 중건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전각의 사방이 벽 없이 창과 문으로만 된 점이 특징이며, 내부의 어좌 위에는 운룡도가 있다.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勤政殿)의 뒤편에 사정전(思政殿)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근정전이 국가의 공식 행사를 치르는 의전용 공간의 기능을 했다면,
사정전은 왕이 신하와 경연(經筵)을 하고 정무를 보는 집무실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라 한다..
우리가 드라마를 볼때 편전 이라고 하는 곳이 사정전 이라고,,,
이 곳은 마루방으로 되어 있어서 동편에 만춘정, 서편에 천추전을 두고 온돌방으로 만들어 부속건물로 사용했다한다
경복궁 이야기 두 번 째 근정전 이야기 http://blog.daum.net/tkfkd1919/5977032
사정전 현판,,사진 펌
‘사정(思政)’이란 생각하고 정치하라는 뜻이라고,,
조선 건국초,궁궐 조성의 책임을 맡은 정도전은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고 하며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한다
[서경]에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고 했으니, 생각이란 것이 사람에게서 작용되는 것이 지극하다고 본 것이라고,
정도전은 백성들 중에는 슬기롭고 어리석고 어질고 불초한 사람이 섞여 있고,
모든 일에는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됨이 섞여 있어서, 임금이 된 자가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펴야
인재를 등용하고 일을 마땅히 처리할 수 있다고 하였다.한다
따라서 정도전은 이 건물에서 왕이 매일 정사를 보고 조칙(詔勅)을 내려 지휘하기에, 한 번 더 생각하여 결정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
사정전’이라 이름 하였음을 그의 문집인 [삼봉집(三峯集)]에 밝혀두었다.,,고
사정전은 좌우에 만춘전과 천추전을 두고 사정전의 공간 기능을 보완하도록 했다. 현재는 이 세 건물이 독립된 전각의 형태이지만 원래는 복도각으로 연결되게 하여 사정전에서 왕이 편리하게 옮겨 다닐수 있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찾은 사정전에 대한 자료이다, 이걸 보고 필자인 나의 생각은 정도전은 자신의 문집인 [삼봉집(三峯集)] 에도 기록해 둘만큼 자신에 이런 생각과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 했을지 모르겠으나 정작 이런 정치를 실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대왕도 정도전도 그시기에 나라의 상황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면 조선을 건국할때 세운 공로는 뒤로 하더라도 다섯이나 되는 장성한 아들들을 제쳐두고 일곱번째 제일 꼬맹이 아들을 세자로 정하는 일은 하지않았어야 했기에,,, 그 시기는 건국초이기에 고려에 충성했던 신하들의 반란의 우려도 있었고 신권臣權이 성했던 시기이기도 해서 이른바 개국공신이라 하는 이들의 자신의 권리주장도 적지 않았을테고 실제로 권신들은 수많은 사병을 가지고 있었던 때여서 나라가 안전되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어쩌자고 겨우 코흘리게를 면한 어린 것을 후사로 정했는지,, 그것으로 인해 왕자의 난이라는 큰 소용돌이와 나아가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건국초기 많은 세월을 소비했고 많은 이들이 아까운 희생을 치루어야 햇으니,,, 정도전 같은 사람도 더 오래 살아서 국가 기반을 튼실이 하고 문물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했으면 좋았으련만,,,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없지만 사정전의 이름을 지을때만큼 생각하고 또 생각 했더라면,,,,
사정전(좌측)과 만춘전(우측)
만춘전(萬春殿)
사정전의 동쪽에 위치한 정면 6칸, 측면 4칸의 부속 전각이다.
온돌을 놓아 방 을 일반 가정처럼 지었고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옆으로 온돌방이 있는 구조이다
두 방중에 마루 동쪽에 있는 방에 임금의 보료가 깔려있다
전각이 세워진 뒤 불탔다가 중건되는 과정은 사정전과 동일하나 만춘전은 6.25전쟁때 폭격으로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아 이던 것을
1988년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폭격이 근정전에 떨어지지 않은 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궁궐에서는 아마도 동쪽을 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건물 이름도 봄春 자가 들어가게 해서 앞에 일만 萬자를 붙여 서쪽에 천추전보다 숫자적으로 우위에 있게 했고
동궁전인 자선당도 대비를 모시는 자경전도 동쪽에 배치되어 있으니,,,
사정전 만춘전 천추전은 복도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복도각이 헐려서 지금은 각 각 독립된 건물로 되어 있는것이라고,
그들이 헐어내지 않고 남겨 두었던 몇 개 안되는 전각은 궁궐을 점령한 그들의 필요에 의해 그나마 살아 남은 것 같다.
사정전 내부
어좌와 일월오봉도 병풍 위에 있는 수묵화인 운룡도雲龍圖는 대궐에 걸려있는 유일한 그림이고
그림중에 용은 임금을, 구름은 신하 또는 백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2001년에 보존처리를 위해 떼어냈다가 최근에 다시 걸어 일반에 공개했다고 되어 있는 걸 보면 역사가 있는 그림일 것 같다 생각되는데
더 자세히는 모르겠고,,,아쉬움,,
사정전 안에 유제 칠보 대형 향로는 뚜껑, 받침대, 3족의 형태를 갖춘 대형 향로로
화려한 작약문을 중심으로 상하 좌우에 만개한 꽃과 꽃잎을 화려하게 칠보로 장식하였고
청나라에서 왕실에 보내온 선물로 진품은 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이것은 복제품이라고,,,
운룡도
사정전 안 천장 단청은 색이 바래져 있는데 최근에 입힌 것이 아니고 150년 이나 된 것이라고 하니
대원군께서 궁궐을 지으면서 입힌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지금은 단청이 화확안료이지만 조선시대에 단청은 천연안료였고 우리나라에서 생산이 되지 않았고
페르시아에서 일본을 거쳐 수입해다 썻던 귀한 것이었다고 한다,,
확대해서 보니 무늬가 아름답다.
단청 하는 사람이 고개를 쳐들고 천장에 저런 섬세한 그림을 입히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다 싶고,,,
용상은 근정전 보다 소박하고
사정전에서는 매일 새벽 3~5시 사이에 ‘상참’ 이라는 어전회의가 열렸다고 하는데
세종은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참에 참석했다고,,,
임금님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되어 쉴참이 없이 바쁘게 움직였는데
지금 사극 드라마를 보면 이런 부분은 없고 비빈들과 티격 태격 하는 것만 비추어 주니,,,
자개를 박아 용을 그린 이 집기도 조선시대 것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일제가 오래동안 점령해 있었기에 예전에 있었던 것이 남이 있지 않았을 것 같다
건물도 뜯어다 자기나라에 지었던 걸 보면,,(자선당을)
사정전 앞에 주욱~ 일렬로 지어진 창고인데 우리가 드라마에서 들었던 ,,내탕고 였었나?
창고에 이름을 천자문의 순서인 天 地 玄 黃 으로 해서 서쪽부터 천자고天子庫 지자고 현자고 황자고 라고 지어졌다고,
천추전(千秋殿)
찾아본 자료는
ㅡ천추전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알수 없으나 세종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고정때 재건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강녕전 부속건물인 연길당과 주변 행랑과 더불어 공진회 심사실로 사용되었는데 별다른 훼손은 되지 않았다ㅡ
경복궁 안내에 문의해 보아도 더 자세한 것을 듣지 못했고
만춘전과 마찬가지로 내부에 온돌이 시설되어 있고 천추전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훈민정음 창제를 의논하고 새로운 문물을 연구 하던 곳이었고 측우기, 자격루 등이 선보인 곳도 이 곳이라고 한다
지금 사정전 뜰아래 있는 앙부일구(해시계)는 모조품이라고,,,
만춘전과 천추전은 사정전에 비해 작고 소박하게 민가의 주택 분위기로 되어 있었다
1452년 5월 14일 문종이 37세를 일기로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의 편전 便殿 은 사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고
근전전 영역으로 통하는 사정문과 침전영역인 강녕전으로 통하는 향오문 사이에
사정전 만춘전 천추전이 남향으로 근정전과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을 행각이 둘러져 있다
앞에 있는 근정전은 1각이고 (건물이 하나) 바로 뒤에 있는 편전인 사정전은 건물이 3 전, 그 뒤에 강녕전 일원은 건물이 다섯채로 배치된 것은
동양의 천문도(天文圖), 즉 북극성(北極星)ㆍ삼광지정(三光之庭)ㆍ오제좌(五帝座)의 별자리를 본뜬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고,
강녕전 일곽을 형성하고 있는 다섯 채에 건물은 우주 만물의 근원인 오행(五行)을 상징하고
. 또한 강녕전 정문인 향오문 밖에 있는 사정전ㆍ만춘전ㆍ천추전 세 채의 편전 일곽은 강녕전 일곽의
다섯 채와 더불어 팔괘(八卦)를 상징한다.고 한다
천추전 내부 동쪽에 있는 동온돌로 임금님이 앉아 있었을 듯한 보료가 있다
천추전 서쪽 방 아래 윗칸
건물 뒷쪽 , 가운데 사정전은 굴뚝이 없고 양쪽 만춘전과 천추전만 굴뚝이 있다
↓아래 건물은 건물 측면인데 사진 정면에 뜰아래로 보이는 네모 두개 구멍 같은 것은 불때는 아궁이 였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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