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을 축으로 주요 전각들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경복궁 전경 사진 가져온 곳 (조선의 궁궐과 종묘)
11월 15일 경복궁을 다녀 왔어요
몇 장 찍어온 사진을 올리려고 경복궁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 궁궐의 역사가 그야말로 파란만장 했네요
여러 자료와 사진을 수집했지만 너무 참혹한 모습은 차마 실을수 없어 생략 했습니다
오랜세월 찬탈과 전란을 겪으면서도 그래도 전각 몇동이라도 옛모습으로 서 있는게 눈물 겨웠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이 창건되고 3년째인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해 이듬해에 완성하고,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 불렀다.
이 때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으며, 수조지소(受朝之所)인 근정전(動政殿)이 5칸에 상하층
월대(越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벌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시사지소(視事之所)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풍추월·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
경복궁이란 명칭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따서 경북궁이라고 지었다.
경복궁은 1394년 고려의 남경 이궁터에 창건한 조선의 정궁으로
임진왜란때 모든 궁궐전각이 소실되어 있던 것을 흥선대원군이 중건하였으나
다시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현재의 모양새를 이루게 되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의 제도에 따라 좌측에는 종묘가 위치하고 우측에는 사직단이 형성되었다.
경복궁의 주산은 백악(북악)산, 안산은 목멱산(남산), 좌청룡으로는 타락산, 우백호로 인왕산을 삼았다.
경복궁의 앞에는 육조거리가 조성되었는데
좌측으로는 의정부, 이조, 호조, 한성부 등이 위치했고 우측으로는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사헌부가 위치했었다.
또한 광화문 앞 대로가 당시에는 황토현이란 언덕으로 가로막혀 있어 숭례문에서 지리적으로 보호되었었다.
사진 펌,,일제 강점기 시절 총독부 건물 뒤로 근정전 사정전 수정전 경회루만 보이고 모두 헐려버린 모습
1951년 6.25 전쟁후에 모습이라고 함,,,자료제공 문화재청
◆ 경복궁 연혁
태조 3년 8월(1394년) : 왕이 남경 고려 옛궁터를 궁궐터로정함
태조 3년10월(1394년) : 한양으로 도읍을 옮김
태조 4년10월(1395년) : 신궁의 명칭을 경복궁이라고 하고 제전각 이름을 강령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용문루, 근정문이라 함
태종12년 5월(1412년) : 큰 누각을 짓고 경회루라 함
세종 8년 1426 후원 조성
세종 8년10월(1426년) : 각 문과 다리 이름을 홍예문, 광화문, 일화문, 월화문, 건춘문, 영추문, 영제교라 함
세종13년 4월(1431년) : 광화문을 개축함
세종16년 3월(1434년) : 광화문에 새 종을 안치함
세조 2년 3월(1456년) : 후원에 새 정자를 짓고 취로정이라 함
연산12년(1506년) : 경회루 연지에 만세산을 만들어 놀이터로 함
명종 8년 9월(1553년) : 큰 화재가 나서 강령전, 사정전, 흠경각 등이 불에 탐
명종 9년 9월(1554년) : 소실된 건물을 재건함
선조25년 4월(1592년) : 임진란에 경복궁을 비롯한 모든 궁궐이 소진됨
고종 4년10월(1867년) : 중건공사가 시작됨 경복궁 중건
고종 4년11월(1867년) : 중건공사가 완료됨
고종 10 년(1873) 경복궁 일곽 창건
고종10년12월(1873년) : 건청궁 역사가 있었음, 자경전이 불에 탐
고종13년11월(1876년) : 대화재가 발생하여 교태전 등 내전 830여 칸이 소실됨
고종 25(1888년) 강녕전 교태전, 자경전 등 재건
1915.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구실로 전각들 다수 철거
1917년 : 창덕궁 내전이 불타 그 복구를 위해 경복궁의 교태전, 강령전 등을 헐음
1920년 : 경복궁 내전의 재목으로 창덕궁 전각을 건설함
1915.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구실로 전각들 다수 철거
1926. 조선총독부 건립으로 궁역 크게 훼손
1968. 광화문 불완전 복원
1968년 박정희 정권 시절에 문화재에 대한 확실한 고증없이 복원 되었던 광화문
궁안에 총독부 건물도 그대로 있다
1996.김영삼 대통령시절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옛 총독부 건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경복궁
1990. 경복궁 복원사업 시작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잘못 지어졌던 광화문 철거후 2010. 광화문 복원 완료
경복궁 복원
복원1990. 경복궁 복원사업 시작
1996.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1995 침전지역복원(강녕전 교태전 함원전 흠경각 등)
1997년 동궁지역복원 (자선당 비현각 등)
2001 흥례문 지역 복원 (흥레문 영제교 등)
2005 빈전 지역 복원 (태원전 영사재 공묵재 숙문당 등)
2007건청궁 지역 복원 (장안당 곤녕합 복수당 등)
2010 광화문 복원
1차 복원 정비사업을 끝낸 현재의 경복궁은 일제의 철거를 피해 남아있던 건물 36동을 포함해
현재 총 125도의의 건물이 들어서 고종당시 500여동의 25%정도 수준까지 복원된 상황
경복궁 내의 일제 유산을 철거하고 조선 정궁의 기본 궁제를 완비하는 것이 1차 복원 정비사업의 목표로
경복궁의 중심축은 대부분 복원되었고 얖으로의 복원은 뼈대의 살을 붙여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 한다
광화문 연혁 복원일지
1395년(조선 태조 4) = 경복궁 정문으로 건립
▲1592년 = 임진왜란으로 소실
▲1865년(조선 고종 2) =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중건
▲1926년 = 일제의 조선총독부 청사 신축으로 경복궁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
▲1950년 = 6·25 동란으로 육축 상부 문루(목조부) 소실
▲1968년 = 당시 중앙청 축에 맞추어 건립(원 위치에서 11.2m 뒤, 13.5m 동측, 3.75도 반시계 방향으로 틀어서
목조 구조 대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립)
▲2006년 12월 =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
▲2007년 5월 = 철근콘크리트 광화문 철거
▲2007년 11월 = 원래 위치와 규모 확인 등을 위한 발굴조사를 완료(광화문 선대 유구 및 어구 수문 등 발굴)
▲2007년 12월 = 작가 강익중씨의 설치미술작품 ‘광화에 뜬 달’을 전면 가림막으로 설치
▲2008년 3월 = 광화문 기초공사 완료
▲2008년 4월~2009년 7월 = 광화문 석조 육축 축조
▲2009년 11월 = 광화문 상량식
▲2010년 7월 = 광화문 문루 단청공사 완료 및 가설덧집 철거 완료
▲2010년 8월8일 = 광화문 현판 설치
▲2010년 8월15일 = 제모습 찾은 광화문 개방(예정)
▲2010년 12월 = 동십자각 주변의 궁장설치, 하수암거 이설 공사 완료(예정)
지금은 광화문 앞으로 바짝 도로가 나서 담장앞에 가까이 세워진 해태상(해치)이
광화문의 옛사진을 보면 넓은 광장에 좀 떨어진곳에 해태상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이때의 해태상은 궁궐안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찾아서 다시 복원돤 광화문앞에 세운것이라 하는데
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복원된 광화문 사진에 있는 해태상 사진과 힌옷 입은 소년이 기대앉은 해태상의 사진에
기단 부분에 균열이 똑같은 걸 보면 지금 복원된 광화문앞에 있는 해태상이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낸 옛것인 것 같기도 하구요
다음에 가면 다시 잘 보고 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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