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0여년 세월이 지난 이야기다
우리 시어머님은 81세에 돌아 가셨는데 만 6년을 대소변 받아내야 헀다
치매는 아니고 정신은 말짱 하셨는데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딱 반을 갈라서 한 쪽이 마비가 되셨었다.
시부모님은 아들만 3형제 두셨는데 나는 막내 며느리이고
우리와 큰 아들은 도시에 살았고 둘째가 고향에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부모님은 고향집에서 농사짓는 둘째와 사시다가 병이 나셨다.
큰 아들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농사 거들고 사실때는 아무소리도 안 하던 둘째 며느리인 형님이
어머님이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병환이 드시니
큰아들이 모셔가야 한다고 아주 강하게 주장했고
그런걸 바라보시는 둘째 시아주버님은 침묵하고 계셨다.
시골 형님댁에선 농사 짓는게 많아서 형편은 부유한 편이었고
서울 형님댁은 경찰 공무원으로 빠듯하게 사는 형편이었다
나는 그 때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딸이 초등학생이었고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둘째 형님은 우리에게도
집을 비우고 나다니니 어머님을 모셔가면 집을 봐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도 하였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고 꼼짝도 못하고 앉아만 있어야 하는 분이었는데,,,,
내가 그 때 30대 중반이었고 큰며느리는 40 중반 이었는데
큰형님은 부모님 모시는 일을 당신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둘째가 먼저 꺼내서인지
마음이 상해 있었고 그렇게 두 분 형님들이 안좋아진 상태에서
어머님은 서울에 큰아들에게로 오셨고 그로부터 만 6년이 지난후에 돌아가시었다
돌아가실때도 그 때 마침 서울 형님댁 혼사가 있어서
고향에 일가분들이 다 오셨었고 병환이 위중해지신 어머님을 뵙고는
얼마 못사시겠다고 고향집으로 모셔야 한다고 모두 말했었는데
고향집에 둘째 형님은 이제 곧 농사철이 나설텐데
대소변 받아내야 하는 분을 모시고 가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고 울고 불고 하셨었고
시아주버님이 그래도 그냥 모시고 가셨는데 열흘도 못사시고 돌아 가시었다.
큰 며느리가 6년 세월 병 수발을 하는 동안 우리 며느리들이 불만이었던 것은 아들들의 행동이다.
자신을 낳아준 친 어머니인데 아들 3형제는 하나같이 모든 것을 며느리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궂은 일을 하나도 하려 하지 않았었다.
우리세대만 해도 어떠한 상황이든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것이
며느리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힘든 상황도 참고 받아드리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아들들의 그런 태도는 힘든 생활을 더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당연히 며느리에 일이라고 떠밀고 바라만 보지말고
자신들의 일로 생각 하고 조금이라도 거들려고 생각하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을,,,,,,
아버님은 어머님보다 2년을 더 사시고 83세로 돌아 가셨는데
아버님께선 오른발 오른손을 쓰시는게 불편해지긴 했어도 돌아가시기 보름전까지
식사 하시고 산책다니고 하시는 것을 스스로 다 하셨었고
그래서인지 형제간에 밀고 당기는 것 없이 고향집에 계시다 돌아 가시었다.
그 때 나빠진 형제간에 감정이 회복 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말을 꺼내면 우리 며느리들이나 아들 삼형제가
아주 못된 심성을 가진 사람들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엄청 착한분들도, 많이 악한 분들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평범한 쪽에서 선한쪽으로 조금 더 가까운 보통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긴 병이 걸린 늙은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일에선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했었다.
옛말에 부모는 열 자식을 길러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하나도 안틀리고 맞는 말이다.
사람은 애초에 종족번식을 위해서 내리사랑으로 마음이 설정되어 있나보다
자식 기르는 일은 생각해 보면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 일인데도
그걸 힘든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부모를 모시는 것은 병환중이던 건강하시든 모두들 힘든다 한다.
더구나 치매 같은 인지능력을 모두 상실한 그런 가족을 돌보는 일은
안 겪어본 사람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어려운 일이고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예전에 내가 자라던 어린시절에는 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의,식,주 같은 것을
거의 집에서 자급 자족을 하고 살았다.
병이 나도 웬만하면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치료했고,,,,,
지금은 그걸 모두 집에서 해결하고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것이다
모든게 분업화 되어서 입고사는 옷은 물론이고
식재료며, 당연히 집에서 끓여 먹어야 했던 밥도 만들어서 파는 공장이 생겼다.
어린 아기도 걸음마만 떼면 어린이집에 보내서 부모가 아닌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병이나면 병을 치료하는 전문가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하고 한다.
부모가 나이들어 병이 들거나 쇠약해져서 요양시설에 보내는것이 이런 것들과 뭐가 다른가,
치매가 걸리거나 노쇄해진 것도 질병이니 질병을 치료하는 전문가가 있는 시설에 모시는 것이
오히려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몸과 마음이 불편한 어르신들께 맞는 시설과, 치료하고 돌보는 전문인들이 있는 곳에 모셔지는 노인들이
가정에서 가족이 돌볼때보다 더 건강해지고 수명도 길어지고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것들이 보편화된 일상으로 받아들여지지않는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나만해도 아주 잘 사는 내 친구가 친정 어머니를 시설에 모셨다는 말을 듣고 잘 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에서 간병인을 두고 모셔도 될만한 경제력인데,,,하고 갸웃 하기도 했었고
만일에 내가 그런 병에 걸린다면 내 아들이나 며느리에겐 시설에 보내 달라고 강하게 주장할 것이지만
내 딸의 시부모가 그런 형편이라면 시설에 보내라는 말 보다는 집에서 극진히 모시라고 할수밖에 없을것이다.
이 다른 두 마음이 다 진실된 내 마음이다.
내 마음도 이러니 병드신 늙은부모를 시설에 모시는 자손들을 흉보는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말 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것이 자신의 일이라면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남의 일은 쉽게 말 할 수 있지만 그게 내 일로 닥쳤을때 그 어려움을 겪으며 잘 할수 있겠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잘 하고 있는것 같은 가정도 있겠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많은 갈등을 안고 사는 가족도 많이 보았고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도 보았고 힘든 것을 못 견딘 며느리들이 정신병원 치료를 받게 되는 것도 보았고
그러면서도 주의에 시선이나 체면때문에 그것을 드러내놓고 문제화 시키지 못하는 사람들,,,
그게 옳게 살아가는 방법일까,,,
도리에 얽매이고 체면을 내세우고 그런것을 앞세우기보다 좀더 현실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 되었으면 한다.
어느것이 환자나 가족 모두에게 좋을 일일까를,,,
나는 지금 67세인데 아들하나 딸 하나 있다.
내가 병들고 늙어 수족을 움직일 수 없다면 내 아들딸이 고생하며 내 수발을 드는것 보다는
요양원에 가 있는게 마음이 더 편할것 같은 생각이다.
현재 부모나 가족을 그런곳에 모시는 가족들도
부끄러워 하거나 떳떳이 내세우지 못하고 감춰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끄럽거나 감추는 것은 잘못 되었을적에 갖는 마음인데 이런일은 남과 다른 것일 뿐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더 많이 알려져야 망설이던 다른이들도 실행에 옮기게 될 것이고
그렇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야 경쟁력이 생겨서
실버 산업이 발전하고 편리한 시설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모두 똑같지가 않다.
부모를 모시는 일도 자식을 기르는 일도, 경제 활동을 하는 일도,,,
다른이가 살아가는 방법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게 전부 틀린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게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자세라고 생각한다.
전에 이런 글을 읽은적이 있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은 반 발짝만 앞서 가야지
서 너 발짝을 앞서가면 그 사람이 추구 하는 것을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지금 부모님을 전문 시설에 모시고 주변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이들이 있다면
그는 서너 발짝 앞서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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