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에 돌아가신 이모부님께서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모셔져서 1주기에 다녀왔다
이모부님이 돌아가시기전까지 본인도, 가족들도
서울 현충원에 모실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었고
납골당 시설인 충혼당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었다.
아저씨 돌아가신 다음에 아들들이 이천에 있는 호국원에
모실수 있을가 하고 문의 했더니
아저씨께서는 6.25 참전 용사시니 서울 현충원으로 가셔야 한다고 알려 주어서
그리로 모시게 되었다.
아저씨께서 생전에 국립묘지에 안장되신다는 걸 알았다면
기뻐하셨을 일인데 아쉬운 마음이 있다.
아저씨께서는 6.25 참전 상이용사이시긴 하지만 부상이 경미해서
원호연금도 아저씨 연세가 60이 넘으신 다음에서야 받기 시작했다.
팔 뒤꿈치 바같쪽으로 커다란 흉터가 있으신데
뼈는 다치지 않아서 팔을 쓰시는데 별 지장이 없고
농사일도 다 하셨는데 새끼 꼬는 것만 못하셨다 한다.
그때는 전쟁에서 많은이들이 전사 했고
살아온 사람들도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아저시께선 조금 다치셨으니 원호연금 대상자가 되시리라고는 생각도 안 하셨다 한다.
60이 넘으셔서 우연히 원호연금 신청 자격심사를 하는 분을 만났고
그 분이 상처를 보시더니 신청을 해 주어서 그때부터 연금을 받으셨다.
아저씨께서는 평소에 흉터를 보이시며
김일성한테 선물 받은 것이라고 껄껄 웃으시곤 하셨는데,,,
이곳이 묘지인데도 면적도 넓어서 언듯 묘지가 보이지도 않고
수목도 울창하고 잘 가꾸어 놓아서 공원같은 느낌이다.
현충일을 앞두고 있어서 학생들이 잡초도 뽑고 묘역을 단장 하느라 떠들썩 해서 적막감이 덜하고,,
꽃은 무심히 피어서 바람결에 흔들리고,,,
충성거북상
-거북은 충직성과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이라 하여 예로부터 거북상은 충신의 사당이나 비각 앞에 세워 왔었다.
이 거북상은 충청남도 조치원 어느 누각에 있었으나
일제시대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운반되어 있던 것을
동화물산(주) 김봉록 씨에 의해 1958년 7월 서울현충원으로 옮기어졌다.
처음 정문 안쪽 광장 입구에 설치하였던 것을 1972년 9월 거북등에 시계탑을 건립하면서
이곳(제23묘역 좌측 도로/새빛길 끝)으로 옮긴 뒤
1990년 12월 서경보 스님의 글씨로「忠」자를 새긴 무궁화 꽃잎 모양의 자연석을 현재와 같이 설치함에 따라
충성 거북상으로 이름지어졌다.
생동감을 주는 이 작품은 길이 3.65m, 폭 1.88m, 높이 0.78m의 크기로
백제시대에 조각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미상이다. -
전역한지 오래된 안장 대상자는 일반 화장장에서 화장으로 모신 다음에
유골을 모시고 가면
영현 봉안관에서 진공 유골함으로 다시 모셔서
이곳에 안치 했다가
하루에 2차례씩 합동으로 안장식을 한다.
아저씨 장례식때도 네분의 영현이 모셔져서 함께 영결식을 했다
영현봉안관
영현봉안관은 예전에는 전후방 각 지역에서 사망한 호국영령들의 영현을
묘지에 안장할 때까지 임시봉안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충혼당 안장을 위해 안장의식을 거행하는 장소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1955년 초기에는 옛 기념관 건물(현 청사앞 솔마음집 정자 위치, 1997년 철거)을 사용하다가,
영현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1962년 12월 1일 온실 뒤편에 건립된 건물(현 공익근무원 대기실)을 사용하였다.
이후에는 군악대 지역에 1970년 12월 10일 건립한 97.5㎡ 면적의 블록조 기와로 된 단층건물을 사용하다가,
현재는 2005년 11월 13일 새로 건립한 236.57㎡ 면적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단층건물을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1. 안장시간 : 1일 2회(14시, 16시/평일) 시행
※ 공휴일 발인 시 : 안장승인을 받은 경우 공휴일 임시안치 가능
2. 안장행사 진행
- 안장행사 진행 : 현충원 직원
- 조총발사 및 영현봉송 등 : 국군 의장대
- 소요시간 : 1시간 ~ 1시간 30분
컴터가 고장나서 지난해에 찍어 놓았던 사진을 다 날리고,,
수배 해온 사진
-영결식이 끝난 뒤 영정과 영현을 모신 유골함을 들고 충혼당으로
향하고 있다. 영현소대는 전군 유일의 영현행사를 전담하는 부대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최신 시설의 납골당이 건립되었다.
이에 따라 포화 상태에 이른 서울·대전국립묘지 매장 능력의 숨통이 트이고
국민 장묘 문화 선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부터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 유가족들은 화장된 유골을 매장·납골 중 택일,
매장 희망자는 대전국립묘지에 안장하지만 납골 희망자는 충혼당에 안장된다.
현재 안장 대상자는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와 20년 이상 군 복무 후 전역한 뒤 사망한 사람,
현역 군인 및 군무원으로 전사·순직한 사람 등이다.
충혼당은 2003년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1년 8개월간의 공사 끝에
건립(3층 건물, 연건평 4,791.6㎡, 157억 원 투입)하였고,
2005년 9월 28일 국방부 장관, 국가보훈처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졌다.
충혼당은 2005년 7월 29일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2006년 3월 1일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수용능력은 20,863위로써 개인형이 8,490위,
부부형이 12,373위이고, 옥내가 17,415위, 옥외가 3,448위이다.
충혼당은 대지 9,662.4㎡에 봉안동(3,903.9㎡), 제례동(709.5㎡),
휴게동(178.2㎡)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가족들은 봉안동에 고인의 영현을 안치한 뒤
자유롭게 제례동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다.
재는 1층과 2층에 안치가 가능하며 옥내함의 안치가 완료되면 옥외함에 안치를 할 예정이다
납골당 건립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만장으로 인해 1980년대 중반부터
대전국립묘지에서 매장 안장을 실시해 왔지만 이곳마저 현재 잔여 안장 능력이 5만위에 불과,
향후 20년 이내에 만장될 것으로 예상된 데 따른 것이다.
충혼당
충혼당 1층 옆 동에 제례실이 마련되어 있다.
제사 준비,제사 모시는 동안 바닥도 따듯하게 난방이 된다
제례실 밖 복도,오른쪽으로 제례실이 7개가 있고,,
양쪽으로 이런 주방시설도 2개가 있고,,
그 옆에 이런 깨끗한 식당도 있어서 제사 모신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식당에도 주방시설과 식수대까지 다 있고
현충원을 참배하는 유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시설도 깨긋하고 편리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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