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시골에서는 지금처럼 달력에 빨간 글씨로 표시된 날만 명절로 여기는게 아니었고
정월 대 보름까지 계속 명절이었다.
정초 지나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만두도 많이 빚어서 커다란 가마솥으로 떡국을 끓여서는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여서 먹었고
마당에 멍석 펼쳐 놓고 윷놀이도 하고
설날에 만들어 놓은 이런 저런 맛난 음식들 나누어 먹으며 보름까지 놀았다.
입는 옷도 지금처럼 화학섬유가 없던 때이고 무명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
세탁 하는 것도 우물물에 가서 빨아다 가마솥에 양잿물 넣고 삶아내어
또 깨끗이 빨아다가 곡물가루로 풀을 먹여 다듬이 질 해서 꿰매야 하는 것을 매번 새로 반복해서 해야 했으니
여자들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도 정월에는 보름까지 바느질도 안하고 그냥 놀아도 되었다.
그렇지만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다 여자들 일이니 일이 많기는 마찬가지인데도
워낙 힘든 일을 많이 하고 살다 보니 먹는 일 꺼리는 일로 여겨지지도 않았나 보다.
그렇게 보름이 다가오면 열 나흩날은 잡곡밥과 여러 가지 나물 반찬을 만들고,
이 날은 저녁을 늦게 먹는 것이 아니라고 아침 해 먹고 바로 부터 나물 반찬 만들어서 점심때 저녁을 지었다.
가을에 말려 두었던 시래기, 취나물 아주까리, 가지말랭이, 호박고지 말랭이, 고사리 등등,,
내가 살던 곳은 높은 산이 없어서 높은 산나물은 그리 많이 없었고 농사 지어서 말려 놓았던 것들로 나물을 만들었다.
지금 보면 그 때 정월 보름쯤에 잡곡밥과 여러 가지 말린 나물을 해 먹고 부럼을 깨물고 하는 것은
겨울동안 여러 가지 영양 결핍을 보충해 주는 좋은 생각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 하지 않아서 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신문도 tv도 없던 시대인데 어떻게 그런 슬기로운 방법으로 나물과 반찬을 적기에 만들어 먹게 되었는지 참 신기하다.
동네애서는 이웃 간에 서로 밥과 나물을 나누어 먹고
이 날은 또 김치 종류는 먹으면 안 되는 날이라고도 했고 밥을 아홉 그릇 먹고
남자들은 나무도 아홉 짐을 해 와야 하고 여자들은 물은 아홉 동이 길어 와야 한다고 했는데
그 때는 집집마다 우물이 있지 않았고 마을 공동 우물을 사용 했는데
음식을 만들려니 물은 많이 필요해서 여자들은 물을 아홉번 이상 길어와야 하였겠지만
남자들은 나무 아홉 짐(지게로 아홉 번) 해 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모두 그냥 놀았지,,,
저녁이 되면 부녀자들도 모두 어느 집 한 군데로 모여서 떠들 썩 하게 놀았다,
물동이에 물을 담아 놓고 거기다가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들기면 북치는 것 같고 장고 치는것 같고 해서
그걸로 박자를 맞추어서 두들기며 노래도 부르고 종지 묻기하는 게임도 하고
수건 돌리기도 하고 떠들썩 하니 손벽치고 깔깔거리고 놀아도,
여자들은 말소리도 담 넘어가면 안된다는 완고하고 보수적인 어른들도 이 때 만은 다 덮어 주었다.
밥 참으로는 이집 저집 다니며 몰래 밥과 나물을 훔쳐?다가 비벼 먹는 것이 풍습이었다.
그런 것을 알고 이 날 만은 집집마다 부엌에도 등잔불을 켜 놓아 두고는 했었다
잘 훔쳐 가라고~~
보름날 아침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부럼을 깨물고 풍년들라고 볏섬 만두라고
만두를 크게 빚어서 떡국을 끓여 먹었고 더위 파는 것을 했다.
그 날은 누구든지 친구든지 가족 형제든지 내 이름을 부르면 대 답을 하지 말아야
더위를 안사는 것이다.
말하자면 누가 길동아 하고 불러서 길동이가 대답을 하면
이름 부른 사람이 ,,,,내 더위 사가라,,, 하는 것이다
누가 되었든지 먼저 불러서 더위를 파는 게 상책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해 마다 그런 것을 하니까 뻔히 아니까 누가 부르면 대답을 안 하거나
먼저,,,,내 더위 사가라,,,하면 먼저 이기는 것인데도 늘 부르면 대답 하는 사람이 있고
더위를 사게 되고 해서 깔깔거리고 웃곤 했었다.
옛날엔 의학이 발달 하지 못해서 병이나도 잘 고치지 못 했고
더위를 물리칠 아무것도 없이 부채 하나 들고 살아야 했으니
여름더위도 무서운 것이고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었던 모양이다.
저녁을 일찍 해 먹고는 뒷동산으로 달맞이 하러 갔었지,,,
열다섯 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참깨 대궁으로 속을 만들고 볏짚으로 겉을 둘러서 어린 아이의 나이숫자 만큼 띠를 묶어서
액막이 제웅이란 것을 만들었다.
그것을 가지고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달이 떠오르면 제웅에 불을 붙여 다 태우고 했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어린아이들의 생존율이 낮았던 시대이니
그런 것으로라도 액막이를 해서 아이들 잔병 없이 사고 없이 튼튼하게 오래 살라고
그리 했던 것이다.
전기불이라고는 없던 시절 깜깜한 밤에 둥근 달이 둥실 떠오르면
각 고을 마다 산잔등 여기저기서 불놀이 하느라고 불이 타오르고 하는 것이
먼 거리에서도 다 보이고 장관이었다.
어떤 산에 불꽃이 일 때마다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반가워 하고는 했었지,,,,
동네 사람들이 젋으나 늙으나 아이나 어른이나 다 모여서 제웅을 태우고 불놀이 하고 불구경하고,,
그렇게 즐기면서 대보름 불꽃놀이를 마지막으로 정월 명절이 다 지나가곤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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