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일상

옛날 설 날 풍경,,,시집살이 하던 시절,,

L일순 2010. 2. 21. 23:35

내가 결혼하던 1964년, 시댁은 그리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조금 넉넉한 살림 이었다.

한 여름에도 꽁보리밥은 안 먹어도 될 정도,,,로

어머님께서 시집 오셨을 때는 그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 했듯이

우리 시댁도 가난했었다는데 어머님의 절약과 지혜로 그 만한 살림이 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님은 무척 알뜰 하시고 절약정신이 투철 하셔서

우선은 무엇이던지 아끼고 안 쓰고 보는 분이다.


곡식 한 알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결혼해서 보니 집에 물 퍼 쓰는 펌프가 있었는데

맑은 물을 그냥 버리거나 세수하는 물은 많이 사용하면 야단맞았다

푸성귀를 헹구고 난 깨끗한 물은 그냥 버리지 못했고 큰 그릇에 모아 두었다가

허드레 물로 한 번 더 사용해야 했고 세수 하는 물을 많이 쓰면 나중에 죽어서

그 물을 다 마셔야 한다고 조금씩만 사용하게 하셨다.

 

곡식을 아까워하지 않고 함부로 버리면 하느님한테 벌을 받아 흉년이 들고

물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사용하면  용왕님한테 벌을 받는다고 ,,,

미신이라면 미신이지만 상과  벌을 주는 어떤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행동을 어긋나지 않게 분수에 넘치지 않게 다스렸던 그 마음자세는 본 받을만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님은 신발이 닳아지는 게 아까워서 여름 내내 맨발로 다니시고

내복도 당신 것 사드린 것은 아끼느라 안 입으시고 아들들이 입다가 헤어져서 버리면

그걸 갔다가 기워서 당신이 입으시곤 했었다.

늘 말씀 하시기를, “헌 것이 있어야 새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무엇이던 망가진 것은 단번에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그 것이 재활용되어 다시 쓰일때가 있다고

모아 두셔서는  동네 분들이 늘 하는 말이

ㅡ그 집에 가면 고양이 뿔만 없고 모든게 다 있다고 했을 정도,,,,

 

그렇게 아끼고 안 먹고 안 쓰고 하시는 분이었지만 집에 드는 손님은

맨 입으로 보내는 일이 없이 무엇이라도 먹고 갈 수 있게 하셨다. 

특히 임산부나 애기엄마가 왔다가 맨 입으로 나가면 집에 대들보가 운다고

음료수도 없던 그 시절이니 시원한 펌프 물이라도 퍼 내어서

설탕물이라도 한 대접 마시고 가게 했었다.

 

정월이 되어 설을 쇠고 나면 보름때 까지 날마다 저녁이면 사랑에 모이신 동네 어른들게

떡국을 끓여 밤참으로 내곤 했었다.

60년대 중반이었는데 도시 생활은 어땟는지 모르지만 시골에선 냉장고 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

날마다 저녁밥 해 먹고 나면 손윗동서인 형님과 둘이 만두를 한 소반씩 빚어서는

사랑에 밤참 해 내가는 것을 하고 나야 하루 일과가 끝나곤 했다.

그렇게 하려니 흰 떡도 너 댓 말씩 해야 했고 만두속도 큰 자배기로 하나 가득씩 해야 했다.

정초에는 떡국으로 밤참을 내고 열 나흘에 나물과 오곡밥을 하면 그 때부터 스므 날 까지는

비빔밥으로 밤참을 내었다. 

 

 

 

  

정월 설 명절은 년 중 큰 명절이고 정월만 지나면 힘든 일을 해야 하는 농사가 시작되니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젊은 여성인 며느리들도 정월 초열흘에서 보름까지는

저녁 마실을 나가서 놀아도 양해가 되곤 했었는데

우리 집 며느리 둘인 형님과 나는 사랑에 밤참 해 내느라 한 번도 마실도 못 나가 보곤 했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힘들다거나 하기 싫어 꾀부리거나 할 줄도 모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기고 불평 없이 해 내곤 했었다.

 

나중에 우리는 도시로 나와 살면서 명절에 고향 갈려면,그때는 버스표를 예매한다던가 하는 것이 없었고

당일에 나가서 차례대로 줄 서서 콩나물 시루같은 입석버스에 시달리며

서너시간씩 걸려서 시댁으로 가곤 했어도 시어머님, 맡동서 아래에서 지내던 그 시절이

내 맘대로 하고 사는 지금보다 마음이 훨신 편하고 좋았던 것 같다.

어느 해는 맏동서가 초하루 날 아침 일찍 아기를 낳아서 부산 스러웠던 기억도 있고,,,,


시어머님도, 살짝 시집살이 시켰던 맏동서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어려웠던 중에도 마음은 풍요로웠던 그 시절이 정말 그립다.

나도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추억거리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