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향기

경복궁 향원정香遠亭의 봄 풍경~

L일순 2016. 1. 21. 09:00





경복궁 건청궁 앞에 있는 연못 향원지 가운데 있는 누각이 향원정香遠亭

고종 10년인 1873년 건청궁을 지을때 함께 축조되었다 한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참변을 당하고

유해는 건청궁 뒷산인 녹산에서 불에 태웠고

불에 타고 남겨진 유해는 이 향원정 연못에 버려 졌다 한다

아직도 유해의 한조각이라도 저 연못속 뻘 바닥에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곳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 중에 그 일을 아는자가 몇 몇 이나 될꼬,,,





향원정(香遠亭)

. 2012년 3월 2일에 보물 제1761호로 지정되었고, 경복궁 관리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향원정은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지 내의 가운데 섬 위에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이다.

향원지의 ‘향원(香遠)’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북송대 학자 주돈(1017∼1073)이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따온 말로서

왕이나 왕족들이 휴식하고 소요하던 침전의 후원으로 여기에는 향원지(香遠池)와 녹산(鹿山)등 원림 (苑林)공간이 된다.


향원지는 세조 2년(1456)에 조성되어 취노정(翠露亭)이란 정자를 짓고 연꽃을 심었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에 보인다.

향원지는 4,605㎡의 넓이에 방형인데,모를 둥글게 죽인 방형의 연지에는 연꽃과 수초가 자라고, 잉어 등 물고기가 살고 있다.

향원지의 수원(水源)은 북쪽 언덕 밑에 솟아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는 샘물이다.


이 향원정에 들어가는 다리인 '취향교'는 본래 목교로서 1873년에 향원정의 북쪽에 건청궁 방향으로 설치되었다.

취향교는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들어가도록 북쪽에 있었으나, 6·25전쟁 당시 없어졌으며,

현재는 1953년에 지은 다리가 향원지 남쪽에 있다.

본래의 취향교는 조선시대 원지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길이 32m,폭 165cm)이다.


향원지의 북쪽으로 녹산지역에 있는 담장에는.인유문(麟遊門)이란 일각문(一角門)이 있으며, 

 그 남쪽에는 봉집문(鳳集門)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연못은 한층 아늑한 정취(情趣)에 싸여 있었다.


글:: 문홰청에서 펌






정자의 평면은 정육각형으로 아래층과 위층이 똑같은 크기이며,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으로 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일·이층을 관통하는 육모기둥을 세웠다.

공포(栱包)는 이층 기둥 위에 짜여지는데, 기둥 윗몸을 창방(昌枋)으로 결구하고 기둥 위에 주두(柱枓 : 대접받침)를 놓고

 끝이 둥글게 초각(草刻)된 헛첨차를 놓았다.


일출목(一出目)의 행공첨차(行工檐遮 : 외목도리와 장혀를 받치는 첨차)를 받치고, 다시 소로〔小累〕를 두어

 외목도리(外目道里) 밑의 장혀〔長舌〕를 받친 몰익공식이다.

일층 평면은 바닥 주위로 평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고, 이층 바닥 주위로는 계자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사방 둘레의 모든 칸에는 완자살창틀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육모지붕으로,

중앙의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중심점에 절병통(節甁桶 : 지붕마루의 가운데에 세우는 탑 모양의 기와로 된 장식)을 얹어 치장하였다


글 :: 문화재청에서 펌






예전에는 경희루 연못이나 향원지, 창경궁에 춘당지 등 궁궐에 연못에 연꽃이 가득 심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떤 위정자가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고 여러사람이 찾는 이런곳에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연꽃이 있어선 안된다고 다 걷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을미사변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인 옥호루 玉壺樓



소정각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인 낭인들이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시신을 불태웠다고 전하는 곳.

출처 이미지 사이즈 668x800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