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사진

올림픽 공원 산책로

L일순 2014. 6. 16. 10:00

 

 

평화의 문

 

 세계평화의 문 지붕의 양쪽 날개에 있는 그림은 좌우가 같은 것이 아니고
우측에는 현무와 주작, 좌측에는 청룡과 백호가 그려져 있고
고구려 장군총 벽화에 그려져 있는 것을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의 전통 수호신으로 알려진 사신도四神圖

평화의 문 아래 조성되어 있는 연못에 사신도가 투영될때는
일렁이는 물과 함께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라고,,

 

청용 ㅡ 푸른색 하늘의 기를 조정함(비 구름 등을 부름)

백호 ㅡ흰색, 백호 호랑이
현무 ㅡ 검은색 거북이와 뱀이 합친 형상
주작 ㅡ 붉은색 신비로운 봉황새

 

요기 석장승 같은 것이 서있는 곳이 출입구

 

세계 평회의 문 앞 좌우에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짖고 도열해 있는 60개의 형상들은
바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인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이것들을 열주탈이라 하며 전통탈의 모양을 조각가 이승택씨가 작품화 시킨 것이라 한다
작품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가장 세계적이 것 이라는
한국적인 전통찾기의 민족 자긍운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 이라고 ,,

 

 

 

 

선사문명과 화려한 백제문명을 꽃피웠던 터전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공원으로 변신했습니다.
바로 올림픽공원입니다.


올림픽공원은 지난 1984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를 위해

45만여평의 대지 위에 착공, 198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공원 중심부에 몽촌토성이 복원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6개의 경기장이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

서울올림픽의 감동과 한성백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도심 속의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산책객, 스포츠교실회원, 공연관람객 등 다양한 계층의 이용이 해마다 증가하여

그 수가 2003년 기준으로 연간 약 570만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일평균 16,000명이 이용하는 것으로

올림픽공원이 도심 속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ㅡ공원 홈페이지에서 펌 ㅡ

 

88올림픽때 조성되었으니 15년이 넘었는데

멀지않은 거리에 있으면서 이제서야 가 보게 되었다

45만평의 적지않은 넓이에 조성된 공원은 이제는 수목이 지연스레 울창해지고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근처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아름다운 풍광은 사진가들의 출사지로도 각광 받는 것 같다

 

 

 

이게 무슨 용도로 씌여지는 차인지 모르겠으나

 아직 시트에 비닐도 안 벗기고 번호판도 달지않은 똑같은 차가 50여대 서 있었고,,

 

 

근처에 중학교 학생들이 나와서는 사진찍고

아마도 앨범 사진 촬영인 듯

남 중학생들인데 덩치가 다 커서는,,,그래도 구엽고 싱그럽고,,

 

 

시간 맞추어 음악소리와 함께 춤을 추듯 올라오는 분수~

 

 

 

 

 

 

 

누렇게 익어가느 보리밭

청보리 였을 적에는 옆에 유채꽃밭도 있었던 듯~

보리밭 웬쪽으로는 지금도 백제문화유적이 발굴 중인데 촬영금지 접근 금지..

 

예전에 88올림픽 이전에 영파여고 바로 옆에 살았던 적 있었는데

이곳으로 걸어서 저 다리를 건너서 밤 줏으러 오고는 했었는데

그때는 공원이 조성되기 전이었고

 

 

 

 

 

몽촌토성

이 성은 오래전부터 한성백제시대의 토성으로 전하여 왔을 뿐, 그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1980년대에 들면서 주변 일대가 88서울올림픽 체육시설 건립지로서 확정됨에 따라

 이 성의 성격파악과 아울러 유적공원으로 복원키로 결정하고, 고증자료를 얻기 위해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1983~1988년까지 5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얻어진 자료를 토대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토성은 한강지류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진흙을 쌓아 성벽을 만들었고,

특히 북벽의 단을 이룬 곳에서는 나무울타리를 세웠으며, 그 외곽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성은 북쪽방향으로 부터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용 성의 성격을 많이 띠고 있는 한성 백제시대의 토성으로 밝혀졌다.

 성 내부에서는 움집터, 독무덤, 저장 구덩이 등 유구와 함께 백제토기를 비롯하여

무기, 낚싯바늘, 돌절구 등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한성백제시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

 

천호대교 남쪽 진입로 성내동 쪽에도 몽촌 토성이 있다

 

1968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530 여년이고 높이 17,5 둘레 6미터 라고 한다

사람은 100 년 살기도 어려운데 ,,

자연은 참 위대하다,,

 

 

 

 

 

 

 

이 둑이 토성이고 (흙으로 쌓은 성)저  목책이 적을 방어하는 것이었던 듯

 

몽촌토성목책

우리나라의 목책은 초기 철기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기간에 걸쳐 적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쓰여졌다.
목책은 단순히 목책만으로 설치한 목책성이 있고 몽촌토성과 같이 토성벽 위에 목책을 설치한 성이 있다.

몽촌토성의 목책은 1983~1988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결과

 목책의 자리가 확인되었는데 생토 암반층에 1.8m간격으로 직경 30~40cm, 길이 30~90cm의 구멍을 파고

큰나무를 막아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사이에 보조기둥을 세웠던 것이다.

목책의 높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m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목책은 발굴조사된 원래의 목책기둥 자리를 따라 그 위에 추정복원한 것이다

 

 

 

 

 

 

 

 

 

88올림피 당시에 그 성화

위가 막혀있질 않으니 태풍같은 큰 바람이 불면 꺼지기도  한다고

 

공원이 꽤 넓어서 어두워 지도록 있었어도 다 둘러보진 못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울때 다시 가 보기로,,

 

그런데 평화의 문은 야경이 더 아름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