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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오래 전에 금강산 다녀온 이야기,,1

L일순 2014. 3. 6. 13:35

 

2005년  제한된 금강산 관광 다녀온 이야기

다른 곳에 올렸던 것 가져 온 것 입니다

제한된,,,이라 한 것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는게 여행인데 정해져 있는 제한된 곳만 보고 왔으니,,

글을 올리면서 장르를 구분하는 것에 국내여행이라고 해야 할 지 해외여행이라고 해야 할 지 애매하네요

국내여행 이라 하면 아닌 것 같고 해외여행,?이라 하기도 우습고

그래도 국내여행은 아닌 것 같으니 해외여행으로,,,,,

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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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은 요기에 http://blog.daum.net/tkfkd1919/5977080

 

천하 제일 명산 금강산 !

 

뭐 이것은 그 쪽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구 이지만
금강산 하면 누구나 한 번 쯤 가보고 싶게 하는 화려한 수식어가 많이 있지요.
더구나 그 곳이 아무나, 아무 때나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후로
한반도 남쪽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더욱 그리워 하는 곳이 되어버렸죠.
저도 물론 그랬었구요.

 

저희 집안 문중에서(남편 안동 權) 종친회 자금이 좀 여유가 있어서
1~2년에 한번씩 문중 사람 단체 여행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 금강산이 선택이 되어서,,,,,,,,,,

회장이 말 하길 “나이 많으신 분들 돌아 가시기 전에 금강산 한번 보여드리자고”

50세 이상 되는 사람들만 1박 2일 코스로(차에서 일박 현지에서 일박)다녀오게 되었죠.
기왕에 금강산 한번 가는 것 내 맘대로라면 꽃피고 잎 피는 계절이나
가을 단풍이 수려 할 때 가면 좋겠는데 단체 여행이니 시기가 맘에 안 들었지만 걍 따라 가는 수 밖에요.

 

2005년 2월 26일,

문중 중심인 경기도 여주에서 밤 열 두시에 출발해서 1차 수속 코스인 금강산 콘도에 새벽 3:50분 도착,

그 곳 사람들 업무 시간인 다섯시 까지 버스에 탄 채로 기다리고,,,,
05: 30분에 김밥이랑 그 곳에서 준비해 준 따끈한 북어 국으로  요기 하고
일행 모두 신분증 확인 하고 관광 증 교부받고,
북쪽으로 들어간 후에 우리가 해서 안 되는 일과, 해야 할 일 들을 안내원(현대측)으로 부터 듣고
07시 쯤에 출발 했습니다,

 

날이 히뿌옇게 밝으면서  주변을 둘러 보니 콘도 뒷 쪽은 바로 바다이고
앞 쪽으로 조금 비껴서 건물이 몇 동 있는데 해수탕이며, 횟집 간판이 보였습니다.

 

관광증이란 우리가 그 곳 여행지에서 줄 곳 목에 걸고 다녀야 하며
갈 때와 올 때 통과하는  양쪽 출입국관리소에서 확인받아야 하는 여권 같은 것입니다.

여권 사진이 붙어 있는 것 2 장과,
서명해서 갈 때 올 때 제출 해야 되는 것 2장,
출발과 도착 일자가 적혀 있고 숙소와 방 번호가 적힌 것 1장, 총 5장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손바닥 정도 크기에 비닐 케이스에 넣어져서 목에 걸 수 있게 줄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을 물에 적시거나 오염 되거나 하면 집에 못 온다고 해서 소중히 모시고 다녔네요,,ㅎㅎ

 

금강산 콘도를 출발 해서도, 아직은 남쪽 땅이라 하더군요.
통일 전망대, 많이 들어보던 지명인 명파리,를 지나면서 보니
그 곳에도, 통일 공인중개사,금강간 공인중개사,민박, 무슨 무슨 횟집,

건어물 직매장, 산나물직매장,등
이 있었지만 상점이 많거나 번화하진 않았고 한적한 시골 마을 같았습니다.

 

오른 쪽 옆으로 바다가 보이는데 들과 모래사장 경계에  철조망이 쳐저 있고
넓지는 않지만 고운 백사장이 꽤 길게 이어져 우리를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그 곳이 명파리 해수욕장이라고 간판이 있었는데, 그 곳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아무나 수속 밟지 않고 갈 수 있는지 알아 보진 못 했습니다.

 

비무장 지대를 지나 곧 남측출입국관리소에 도착했고 우리가 타고 간 관광버스는
그 곳 까지 밖에 갈 수 없다 했습니다,

공항처럼 짐 검사 받고 들어가는 문 반대 쪽으로 나와서 우리가 북쪽에서 이용 해야 하는
셔틀 버스로 갈아 탔지요. 우리 인원이 58명 이었는데 두 대에 나누어 탓습니다.

 

차 앞 유리에 붙여진 이름은 ,통나무 20호 우리의 조는 통나무21조.
우리 일행 58명은 2개조로 나누어져 한 조에 가이드가 한 명씩 배정 되었습니다.
우리 가이드는 날씬하고 여물어 보이고 재치 있고 옆 옆 한 아가씨 노 해인씨 였습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펜션식<단독> 콘도 였는데
통나무는 숙소에도 그대로, 통나무 몇호로 되어 있었습니다.
금강산 호텔이나 해금강 호텔에 투숙 하는 다른 일행 들은 숙소 이름을 붙여서
“해금강 몇조”이렇게 되어 있었구요.

 

차창밖으로 기찻길이 우리가 가는 길 방향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는데 동해 북부선이라 하던가요.
우리는 ,아무때나 갈 수 없는 북쪽땅으로 접어 들었는데
바닷가 모래사장은 계속 우리를 따라왔고, “동해북부선”이라하는 철길도 우리가 가는 길과 같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길은 6.25전부터 있었던 철길이라 합니다.
국토가 분단된 이후에 운행은 끊겼는데 관리는 계속 하고 있는 듯
철로주변이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하고 철길도 가지런히 멀리서 보기로는  별탈 없는 듯 보였습니다.

 

거기서 부터는 길가에 북쪽 군인들이 서 있는 것도 보였고 멀리 주민들이 사는 것 같은 주택도 보였고

포장된 도로에는 걸어 가는 사람, 자전거 탄 사람 들이 간혹 지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고 가는, 길지 않은 시간 이었지만 차가 지나는 것은 못 보았습니다 .

 

군인들은  지나가는 관광차를 감시 하기 위하여 서 있는 듯, 우리 쪽을 보고  있었으나
가까이 있지는 않았고 꽤 멀리,얼굴을 확인 할 수없는 거리에 서 있었고  드문 드문 있었습니다.

 

그 쪽에 주택 모양은 모두 똑 같았는데 구조는 기억자와 한일자로 된 두 종류 였고
벽은 힌 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지붕은 회색 기와 모양된 것으로 덮혀 있었고
창문위치도 모두 똑 같았고 집도 가로 세로 줄 맞추어 지어져 있었고 다 일층 이었습니다.

 

논 밭에서나 개울 가에서 작업 하는 사람들 보였는데 기계 사용하는 것은 안 보였고
삽질 하거나 소에 쟁기 메서 갈고 있어서 어릴 적 고향 생각이 나게 했습니다.
길 가에 서있는 전봇대도 나무로 된 것이라 옛 적 우리 고향에 신작로를 연상케 했고요

 

논 밭 가운데 볏 집으로 엮은 이엉으로 넓다랗게 사각형으로 둘러 쳐저 있는 것이 보였는데
궁금해서 물어 보니 그 곳이 하루 작업할 영역 이라 합니다. 

 

“금강통문”과 “구선통문”이라는 검문소도 지나면서

한번은 차만 잠시 정차 했다 그냥 통과하고 한번은 군인 두 명이 차에 올라왔다 갔습니다.


가이드 말이 절대 말 걸지 말고 쳐다 보지도 말고 앞만 보고 있으라고

 몇 번을 거듭 주의를 주어서  숨 죽이고 있었지요.

두 명이 올라와서 한 명은 앞에 우리를 바라보고 차렷 자세로 서 있고
한 명은 버스 끝까지 갔다 와서 내려 가더라구요.
우리가 관광 마치고 나올 때도 똑같은 검문이 있었습니다.

 

가다 보니 붉은 글씨로 우리를 환영 한다고 크게 써서 걸어 놓은 것이 있었는데
내용을 메모해 오지 않아서 그대로는 못 옮기고, ‘관광객을 조국애의 마음으로 환영한다“
이런 내용 이었는데 <환영 합니다>가 아니고 <환영한다>로 되어 있어서
 그 한 구절 단어에 북쪽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

 

북쪽 출입국 관리소 통과할 때 역시 모두 짐 가지고 내려서 짐검사, 관광증 확인 받고
반대 편 문으로 나와서 타고 온 버스 다시 타고 출발,

여주에서 출발한지 거의 9시간 만인 27일 08시 43분에 온정리에 도착 했습니다.
그래도 공항에서처럼 사람 몸은 검사 하지 않았고 겉옷도 입은 채로 통과 했습니다.
글이 길어 져서 다음은 2부에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