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왕이 될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을까
요즘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으로는 이성계를 신격화 하고 있다
상대방에 칼을 엿가락처럼 휘는 장면이 그걸 말해준다
사진 ,,드라마 정도전 홈에서 펌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성계는 수신(修身)은 했는지 몰라도 제가(齊家)는 못했다
ㅡ수신제가 후에 치국평천하ㅡ라는 고사를 인용한다면 그는 뛰어난 장수였을지라도
한 나라를 아우르는 왕의 자격으로는 미달이다
여인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아들인 3대 임금 태종이 강단있게 외척세력을 쳐 낸 것과 비교되는 일이다
건국후에 정도전과 합작으로 다섯이나 되는 장성한 아들들을 제쳐두고 제일 꼬맹이 코흘리개 아들을 세자로 세운 것은
그의 왕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그는 1408년 72세 까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재위기간이 불과 6년1392ㅡ1398 이었던 것이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공정하지 못하고 사심을 두었던 것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경복궁에 궁궐 이름은 정도전이 모두 지었다 한다
근정전(勤政殿),,나라를 다스리는데 부지런하고 근면해야 한다고 ,,
사정전(思政殿) 나라를 다스리는데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고
사진출처,,드라마 정도전 홈에서 펌
이 두 전각 현판의 뜻 만큼이나 이성계와 정도전이 게을리 하지 않고
사심을 두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후계를 정하였다면 국초에 왕자의 난 같은 어지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그려지고 있는 정도전의 모습은 불의와 타협을 할 줄 모르고
올곧은 선비정신과 원칙주의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설정인데
조선 건국후에 역사에 남겨진 정도전의 행보와는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때가 나라의 기반이 안정 되었을때도 아니다
전 조인 고려의 충신이었던 이들이 반란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들의 세력도 각자 사병을 양성했을만치 그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시기에 겨우 열살 남짓한 세자에 늙은 왕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구조이다
이것은 이성계가 나라의 왕이기전에 한 가문의 아비로서도 가문의 앞날 을 깊이 생각했다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는 왕이 될 운명을 타고 났는지는 몰라도 왕의 깊은 품성과 혜안은 타고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구조에서 이익을 볼 사람이 누구겠는가
늙은 왕도 어린 세자도 아닌 왕의 측근에서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정도전이 아니었을까
정도전은 자신이 갈고 닦은 학문을 바탕으로 오직 나라의 앞날 만을 위한 사심없는 정치를 했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왕권을 약화시키고 신권臣權을 강화시키려는 무소불위 無所不爲 의 전권을 휘두르는 신하가 생기는 것도
통치자의 능력부재에서 온 것일테고,,
혹여 내 이글이 이성계를 폄하 했다고 전주이씨 문중에서 태클 걸지 모르지만
나도 전주 李가 효령대군 자손 중에 편안강(康)자 항렬임을 말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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