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70인 내가 어렸을때 느낀 명절과 지금 젊은이나 어린이들이 느끼는 명절은 그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옛날에는 우선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아서 매 끼니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하루 세끼니를 챙겨 먹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날마다 흰씰밥이나 고깃점을 먹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농경사회였던지라 땅이 얼어붙어 일을 할 수 없는 겨울에는 소득을 올릴 수 있는게 없으니
대부분의 가정에서 점심은 먹지않고 아침 저녁만 먹었고 그것도 밥이 아닌 한끼는 죽을 먹었다
1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이나 조상님 기일, 집안 어른 생신이 아니면 생선이나 고깃점을 먹는게 쉽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 제일 중요한게 의, 식, 주, 중에서 먹는 것인데
먹는게 그러하니 의복의 치장이란 더 어려웠을 터
1년에 두번 있는 설, 과 추석 명절에는 조상님 제사도 모시고 하니
어려운 형편이라도 생선 한토막이라도 장만 했을테고 평소에 먹어볼 수 없었던 떡도 하고
흰쌀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새옷 한 벌 고무신 한켤레라도 새로 장만 했으니
아이들이 명절을 얼마나 기다리고 반겼겠는가
내가 어렸을때도 설빔 추석빔으로 새 옷 지어 장롱에 넣어 놓으면
어른들 몰래 날마다 한 번 씩은 꺼내 입어보며 그걸 입을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지
날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이제 몇밤 자면 되나 어른들께 물어보고는 했었는데,,
신고 다니던 신발이 떨어져도 추석이나 설에 사준다고 기다려야 했었지
지금은 모든게 풍족하다
먹는 것 입는 것 모자람이 없으니 아이들이 명절을 기다려야할 이유가 없어졌고
어려서 부터 공부라는 경쟁에 내 몰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명절이라고 편히 쉴 수도 없고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던 그 시절 어린이들에겐 여러 가족이 모여 웃고 즐기는것 자체가 즐거웠지만
컴퓨터에 스마트폰에 자극적인 즐거움에 길들여져 있는 요즘아이들에겐
온가족이 모여 하는 윷놀이도 별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 같다
농경사회에 주부들과는 비교안되게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젊은 엄마들에게도 명절은 버거운 일일 수 밖에 없다
도시에 편안함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겐 시골의 자연이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도로를 가득메운 차량행렬에 출발부터 지치지 않을 수 없을게다
시대가 이렇게 변했는데 우리의 명절 풍속은 변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이다
늘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사는데도
명절이라고 고기에 떡에 상다리가 휘게 음식을 차리는 것 만이라도 좀 덜 해보면 어떨지,
1년에 겨우 두 번 있는 명절인데 그걸 귀찮아 한다고 젊은이들을 탓할게 아니라
시대가 예전에 비해 하늘 땅 사이만큼 변했으니 명절을 지내는 풍속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모처럼 온가족이 모여서 음식만들고 먹고 하는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아이들도 참여해서 즐거운 추억으로 생각할 만한 가족행사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고,,
추석이란,,,,펌
추석(秋夕)은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로 부르기도 하며,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서 설날과 더불어 한국인에게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다.
추석에는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추석이 오면 전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를 흔히 '민족대이동'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추석의 전날부터 다음날까지 3일이 공휴일(1)이다
추석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라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이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란 '가운데'를 나타내는데,
'가위'란 신라 시대 때 여인들이 실을 짜던 길쌈을 '가배(嘉排)'라 부르다가 이 말이 변해서 된 것이다.
추석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신라의 제3대 왕 유리 이사금 때 벌인 적마경기(績麻競技)에서 비롯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왕이 6부를 정하고 나서 이를 반씩 둘로 나누어 왕의 딸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部)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어 편을 짜서
가을 음력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大部)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도록 하여 오후 10시경에 그치는데,
음력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적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편은 술과 음식을 차려서 이긴 편에게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모두 행하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 때 진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해 말하기를 "회소 회소"라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이라 이름 하였다.
嘉俳의 당시 발음이 ‘가배’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부터중세 한국어의의 ‘ᄀᆞᄇᆡ’와 지금의 ‘(한)가위’라는 이름이 온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의견은 대략 10월경에 벌어지는 동명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일본의 역사책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날을 승전일로 기념하여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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