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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4년이나 흘러 갔다네요

L일순 2014. 6. 25. 16:19

 

벌써  64년이나 흘러갔다네요

제가 일곱 살 때 6,25전쟁을 만났지요

그 나이에 전쟁이 무엇인지 뭘  알았겠어요

 

1950년 그 해 여름

마당에서 놀다 비행기가 낱게 떠서 굉음을 내고 지나가면 집안으로 뛰어 들어 갔었고

사랑방에는  집안 남자 어른들이 자주 모이 셨었고

할머니와 엄마는 커다란 가마솥에 곡식을 볶아 가루로 만들고 했었지요

 

 

 

경기도 한적한 농촌 마을에 살았던 저는

1.4후퇴로 피란 가기전까지는

북한군도 미군도 만나지 못했었고 총성도 들을 수 없었지요

 

1,4 후퇴

1951년 1월 4일  겨울이 절정인 그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압록강까지 올라갔던 우리군이 사정없이 밀려서

그 유명한 흥남부두 철수 작전도 그 때 있었던 일이지요

우리도  피난을 갔었지요

아버지는 전쟁이 난 해인 그 전 해  가을 이후로 만날 수 없었지요

외할머니는 집에 남아 집을 지키셨고

와할아버지 엄마 아직 결혼 전인 이모와 저

엄마등에 업힌 세 살 동생

이렇게 피난길에 나섰지요

 

22세 아리따운 처녀였던 이모는 얼굴에 숯검댕을 바르고 누더기를 입고,

등에는 봇짐을 짊어지고

아버지의 생사를 모른채로 엄마는 세살배기를 등에 업고

머리에는 봇짐을 이고

눈길을 걷고 또 걸었지요

 

그 해는 눈도 참 많이 왔어요

눈이 쌓인 길을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니 길은 반잘 반질 해 져 있었지요

이불보따리를 지게에 얹어 지고 가는 사람들

늙은 부모를 지게위에 지고 가는 사람들

지금처럼 프라스틱 그릇 같은게  없던 시절이니

그릇으로 쓰는 바가지를 지게에 주렁 주렁 매달고 가는 사람도 있었고

 

철모르던 저는 가다 쉬기만 하면 반질 반질한 눈길에 그림을 그려놓고

사방치기를 하며 놀았었지요

 

우리는 여름에 볶아서 가루로 만들었던 쌀가루를 물에 타 먹어가며

목표도 없이 남쪽으로 내려 갔지요

일곱살 어린 나도 다리 아프다고 응석부릴 엄두도 못내고 어른들과 같이 걸었지요

할아버지께서,,잘 간다,,잘 간다 ,,하는 추임새를 주시면

힘이 나서 씩씩하게 걸었지요

 

할아버지 께서는 고향집 주소를 제게 외우게 하셨어요

경기도 여주군 무슨면 무슨리,,

누가 어디서 오느냐고 물으면 앵무새처럼 제가 말하고는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가족과 헤어져 길을 잃게 될까봐

그걸 외우게 하셨던 것 같아요

 

어디쯤 가서 서양 군인들은 처음 만났는데 그들의 생김새가 얼마나 무서었던지요

키는 할아버지의 두 배는 되게 크고 살결은  하얗고 눈은 노랗거나 파랗고

 

그들은 젊은 여성을 일컷는  ,,색시,,색시를 입에 달고 동네를 기웃거려서

엄마와 이모는 산속으로 숨고 저는 무서워 할아버지 뒤에 숨었지요

 

충청도 어느 인심좋은 마을까지 가서 더 내려가지 않고 오막살이 빈집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지요

할아버지께서 한학을 공부하신덕에? 그마을 유지로 생각되는 집 사랑에 식객이 되시고

엄마와 이모는 그런집에 허드렛일을 해 주며 삯을 받아 연명 했지요

 

겨울을 지나고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봄에 집에 와 보니

우리마을은 모두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 당장 머무를 집도 없었지요

미군들이 들어와 빨갱이가 숨어 있을 거라고 집들을 다 태웠다네요

우리는 할머니 혼자 불타는 집을 불을 끄시고 간신히 끄집어 내 놓은

화덕내 나는 불에 그을린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며 지냈지요

 

그 전쟁을 치루고 나니

아버지 엄마 나 동생 둘 다섯 식구 였던 가족은 

스물네살  젊은 청상 엄마와 한해 지나 여덟 살인 나  둘만 남았더라구요

엄마등에 업혀 피난 갔던 어린 동생은 피난길 다 보내고 들어와서

그만 병을 얻어 하늘로 갔지요

 

요약해서 썻는데도 긴 글이 되었네요

빌려온 글 아니고 제 이야기 입니다